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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이야기 2 - 사라진 농성장
노사문제는 개인이 아닌 누군가의 부모와 배우자와 어린 아이들의 문제
일곱째별  | 등록:2017-12-01 08:27:45 | 최종:2017-12-01 08:38: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유성기업은 자동차 각종 내연기관의 핵심부품인 피스톤 링, 실린더 라이너, 에어 컴프레서 등을 생산하는 업체다. 1959년에 설립되어 국내 7개의 사업체가 있는 유성기업의 회사방침은 고객제일, 화합정진, 기술혁신이다. 고객을 제일로 여기는 유성기업의 주 고객은 현대·기아자동차. 그것이 유성기업 노조 농성장이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있는 이유다.

현대자동차 본사 앞 유성기업 노조농성장

한 주가 지나고 유성기업 농성장을 다시 찾았을 때는 전날 하루 종일 내렸던 비가 잠시 주춤했다.

길목 협동조합원이자 ‘평화의 나무’ 합창단원인 재옥 씨의 곤드레나물밥과 얼갈이열무김치에 선주 씨가 만들어 온 갖가지 반찬과 정선에서 온 찐 옥수수가 디저트로 나왔다. 비닐천막 농성장에서 노조원이 타주는 믹스커피는 소문대로 유달리 맛있었다. 평소에 그 커피를 마시면 어지러웠는데 그 날만큼은 투박한 손으로 정성을 타 준 덕분인지 괜찮았다.

영동에서 온 동네친구 출신 조합원 세 명과 자녀들 진학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그 날은 유시영 회장의 항소심 선고 일이었다. 두 시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역시 시각이 가까워 오자 몸이 달았다. 서둘러 법원으로 갔는데 403호 문이 닫혀있었다. 벌써 선고가 끝났나 했는데, 알고 보니 대전지법이었다. 늘 그렇듯이 생각 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후, 내가 그들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부끄럽고 아쉬운 마음에 청운효자동 주민 센터 앞에 가보았다. 천막은 꽁꽁 닫혀 있고 그 안에는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1년 6월에서 4개월 감형된 1년 2월에 벌금형 100만 원 선고가 그를 몸져눕게 만든 것일까, 나는 두드릴 문도 없는 천막 밖에서 서성이다 되돌아 왔다.

<도시락 싸들고> 온 이들에게 커피 타주는 조합원

이틀 후, 늦은 아침 식사를 하려다 문득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농성장이 생각났다.

밥을 싸가지고 가서 함께 먹어야지, 하는 충동이 순간적으로 일었다. 여기저기 연락을 해보았으나 그 날 그 천막 안에 유성기업 사람들은 없다고 해서 다음 주를 기약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목요일, 농성장이 철거 되었다. 그 현장을 본 건 밤이어서 금요일에 연락을 해 보았다.

‘문재인 정부에게 묻습니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적폐를 청산하고 불법을 바로잡겠다는 약속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 성명서의 일부다.

한 주 전부터 전조는 있었다. 천막 근처 주민들이 청와대 주변의 집회, 시위와 점거로 인한 피해 대책마련을 위해 목요일에 모인다는 벽보가 있었다. 종로구청 민원신고에 접수된 생활불편신고 사례가 여러 건이었다. 시민 불편사항 신고민원에 구청은 해결하고 답변해야 할 책임이 있다. 주민들 모임이 있고 정확히 한 주 후에 철거 집행이 되었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현장에서 늘 듣는 질문이었다. 지역주민들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농성장이 있던 자리

8월 마지막 날, 다시 찾은 양재동 농성장에는 아산지회 네 명이 있었다.

그 중 2011년 아산지회장을 만났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엄정 대처하겠다고 거론했던 ‘연봉 7000만 원 받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이는 안타까운 일’의 당사자였다. 20년 근속 상태였던 당시, 전임자였던 그가 주야간 쉬지 않고 작업하며 한 달에 두 번 쉬면서 벌 수 있는 최고액이 연 6,400~6,500만 원선이었다고 한다. 한 달에 두 번씩, 일 년에 24일 쉬면서 341일 일해서 그보다 낮은 임금을 받다가 숨진 동료들이 속속 발생했던 그 해 상반기에 매 달 장례를 치러야 했다. 죽음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 그가 지회장회의에서 주장한 것이 주간연속 2교대 근무였다.

8:30~17:30/22~06시 주야간 근무를 08~16시/16~24시로 주간 2교대로 조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회사는 곧바로 직장폐쇄를 했고 용역깡패를 불렀으며 노조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했다. 지회장은 구속되었고 4개월 후 보석으로 나왔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보도한 기사가 있다.

2011년 유성기업 1차 해고 조합원은 27명이었다. 이후 2013년에 복직 후 재해고 11명, 그리고 개별 해고자들이 아산 5명, 영동 2명이다. 해고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조합원들은 영동에서 일, 월, 화, 수, 아산에서 수, 목, 금, 토로 두 달에 한 번꼴로 농성장을 지키러 서울로 올라온다. 때문에 조퇴와 결근에 휴식시간까지 샅샅이 태업이란 명목으로 근무시간에서 제하고 나면 월급이 채 백 만 원도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노조가 20년간 쌓아온 단체협약으로 임금 인상, 상여금 800%, 토요 휴무제 도입, 주 40시간 근무 조건을 만들어 전국 최고의 근무지인 유성기업의 평균 근속 연수는 17년. 20년 정도 근속하면 보너스와 수당까지 다 합쳐 연봉 5,6천 만 원은 족히 되던 월급이 이리 떼이고 저리 떼여, 퇴근 후 대리운전을 해야 생활이 가능한 조합원들도 생겼단다. 돈 때문인지 신념 차이 때문인지 그 사이 이혼 가정도 상당수 발생했다고 한다. 가정도 가정이지만 대로변 비닐천막에서 장기간 노숙을 하다보면 매연으로 인해 복직 전에 폐가 상할 것 같다고 한다.

김성태 前 아산지회장(좌), 정일선 3~8기 아산지회 사무장(우)

9월 6일 수요일엔 빗방울이 흩뿌렸다.

농성장에 깔아놓은 종이상자가 습기를 머금어 양말이 젖었다. 생수통이 주렁주렁 달린 비닐 천막 안에는 첫 방문 일에 만났던 정선옥수수 생산자가 있었다. 두 번째 만난 그의 여전한 미소로 천막 안 눅눅함이 날아갔다. 아산지회 사무장이었던 그는 1차 해고 이후 복직 후 재해고자로, 현재 아내와 둘이 정선에서 농사를 지으며 2주에 한 번씩 2박 3일로 농성장에 오고 있다. 흙을 만져서 인지 그의 얼굴에선 푸근한 자연의 여유가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경제적인 형편을 물었더니 1차 해고자 11명은 현재 부당해고 근로자 지위보전금으로 월 200만 원씩을 받고 있다고 했다. 4인 가족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해고자들이 조합원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만약 대법원에서 패소하면 지금까지 받은 돈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고 한다. KTX 여승무원들이 지금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처럼.

그런데 돈과 해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내게 그가 돌연 표정을 바꾸더니 인상적인 말을 했다. 투쟁 목적이 단지 복직만은 아니라고. 노조는 임금 인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 주간연속 2교대, 그리고 노조파괴 주범 처벌과 직장폐쇄 이후 생긴 어용노조 해체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개인이 아닌 철저한 ‘우리’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순간, 유성기업 노조가 지금까지 강고한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힘, 그 대의명분에 신선한 경외감이 들었다.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는 건 소박한 사람 안에 있는 숭고한 뜻이었다.

피케팅을 마친 조합원 네 명이 천막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한두 달째 농성장에 들락거렸지만 거기서 본 조합원들은 거의 묵묵히 식사를 한 후 부리나케 밖으로 나간다. 그중 한 명이 슬그머니 들어와 믹스커피를 타주고는, 밖에 있던 조합원들이 국통과 밥솥 등 무거운 짐을 주차장까지 들어다 준다.

그들을 보며 고등학교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해 주야간 쉬지 않고 생산품을 만져온 15년에서 20년을 그려보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하는 게 정상이지만 회사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을 원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8시간씩 주간 2교대면 16시간, 주야간 교대면 사이사이 잔업으로 20시간 이상을 노동한다. 작업 환경으로 인한 폐질환 등 산업재해는 차치하고라도 사람이 한 주는 주간에 한 주는 야간에 근무하면 생체 리듬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경영자들은 알고 있는 걸까? 그들은 한 번이라도 그렇게 살아봤을까?

나는 처음에 이 갈등이 단지 생산량과 임금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주된 문제는 제안 시기에 있었다고 한다. 본사인 현대·기아차 주간연속 2교대 전에 협력업체인 유성기업이 먼저 협의를 하면 본사교섭에 일부 변수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 때문에 유성기업 노사관계에 개입한 정황이 있는 현대자동차 본사는 2013년 6월에 국내 자동차 업계 중 최초로 주간연속 2교대를 도입했다. 이 이상한 장유유서는 갑을관계에도 적용돼야만 하는가.

매일 점심시간 대법원 앞 피케팅

농성 일과는 새벽5~6:30에 정몽구 회장 자택 앞과 8~9시와 12~1시에 대법원 앞 피케팅.

9월 13일 수요일, 대법원 앞에 갔더니 노조원들이 막 피켓을 정리하고 가는 참이었다. 내 소개고 뭐고 할 겨를도 없이 다짜고짜 불러 세워 촬영을 요청했다. 카메라 속에서 본 법원의 배경이 된 하늘이 새파랬다. 그러나 카메라에서 눈을 떼었을 때는 세 명 중 가을볕에 빨갛게 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초가을 일상에서 낭만은 증발되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 영동지회 대외협력부장을 만났다. 그 역시 1차 해고자로 6년 중 2년은 집밖에서 생활했단다. 투쟁과 더불어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주신 과수원에서 틈틈이 자두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식사 후, 그가 ‘살찌는 바람’이라고 표현한, 훈훈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찻길에 앉아있자니 새콤달콤한 자두를 맹물에 박박 씻어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싶었다. 실은 구릿빛 그의 얼굴에 묻은 먼지와 땀을 닦아줄 참한 처자를 상상했다.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를 길에서 보낸 그의 고된 삶이 이제는 정착해서 안정을 찾기 바랐다.

그 주 토요일, 청와대 100미터 앞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결의대회가 있었다.

둘러보니 영동지회 대외협력부장이 ‘노조파괴없는세상’ 중 ‘없’자를 들고 있었다. 잠시 후 영동지회장이 무대 위에 올랐다. 발언 뒤 아스팔트로 돌아온 그의 곁에는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가 있었다. 그렇다. 한 사람의 노동자에게는 한 가족이 딸려있다. 그러므로 노사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부모와 배우자와 어린 아이들의 문제다.

김수종 영동지회사무장(前대외협력부장)(좌), 김성민 前영동지회장(우)

길목협동조합 소식지 ‘길목인’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356&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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