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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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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유록 중...제11장 천명(天命) <6>
반공 메카시즘 | 2018-07-06 14:17:21 | 8     

그가 쓴 해월(海月) 선생 문집(文集)의 발문(跋文)을 보면, 이조(李朝) 선조(宣祖) 때 명(明)나라의 사신(使臣)인 찬획주사(贊획主事) 정응태(丁應泰)의 무고(誣告)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이다.



그 정응태 사건의 개략을 보면, 정응태는 조선(朝鮮)의 왜란 중에, 명(明)의 황제(皇帝)에게 글을 올렸는데 그 글의 요지는, 명(明)나라 조정이 요동(遼東) 땅을 빼앗아 탈취하고 있는데. 이 요동(遼東) 땅은 옛 고구려(高句麗) 땅이어서 조선(朝鮮)이 다시 회복(回復)하여야 한다면서, 조선(朝鮮)이 왜병(倭兵)을 불러들여 함께 명(明)나라를 치려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朝鮮)에 파견되어 명(明)나라 군사를 지휘하던 경리(經理) 양호(楊鎬)가 사당(私黨)을 만들어서 조선(朝鮮)의 임금과 신하(臣下)들과 결당(結黨)하여, 명(明)나라 황제를 속이고 대적(對敵)한 지가 여러 해인데, 그 증거로서 조선(朝鮮)의 오래된 책인 해동기략(海東記略)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은 세종 때 신숙주(申叔舟)가 일본을 다녀오면서 왜인(倭人)에게 우연히 책 한 권을 얻어서 보니, 그 나라(倭)의 풍속과 세계지도(世界地圖)를 기록(記錄)하고 있는 왜인(倭人)이 저술(著述)한 책으로 그것을 그대로 인용하여 만든 책인데, 여기에 덧붙여서 우리 나라에 있는 관(館)과 일본과의 관계를 사례별(事例別)로 기록한 책을 한 권 만들었으니, 그 책 이름이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인 것이다.



정응태는 이 책을 보고 인용하여 명나라 황제에게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나라를 무고(誣告)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日本)의 연호(年號)는 큰 글씨로 쓰고, 큰 글씨로 쓴 일본(日本)의 연호(年號) 하단 부분에, 조그마한 글자로 명(明)나라의 연호(年號)를 썼으며,

또한 분수에 지나치게도 태조(太祖), 세조(世祖), 열성조(列聖祖), 성상(聖上)이라 하는 용어는 천자국(天子國)에서만이 쓸 수 있는 용어(用語)인데, 어찌 제후국인 조선(朝鮮)이 함부로 쓰고 있는가?

본보기로 주색(酒色)에 빠지고 횡포가 잔인한 조선(朝鮮) 국왕과 신하들을 문책(問責)하여야 하며, 어찌 감히 일본을 끌어들여 명(明)의 조정을 우롱(愚弄)하는가?

양호(楊鎬)와 더불어 결당(結黨)한 이 무리들이 황제를 기만(欺瞞)하였으니, 황제께서는 너그럽고 관대함을 거두시고, 조선(朝鮮)을 토벌하여 제거(除去)하여 버리라』 고 극언(極言)했던 것이다.

『조선(朝鮮)이 쌀과 곡식과 비단 등을 일본에 헌납(獻納)하였으며, 또한 일본과 조선(朝鮮)이 서로 사신(使臣)을 왕래(往來)하여 일본을 불러들여, 옛 고구려(高句麗) 땅을 회복하려고 쌀을 모으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허언(虛言)이 아니라』 고 한 것이다.

그러한 내용(內容)이 명(明)나라 황제(皇帝)에게 전해졌으니, 명(明)의 황제와 명(明)의 조정(朝廷)에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때 우리 나라의 실정은, 일본과의 오랜 전쟁에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명(明)나라 조정에서 정응태의 글을 그대로 인정하여 우리 나라를 토벌한다면, 우리의 국운(國運)은 그야말로 바람 앞에 등불인 것이다.

이 때에 조선(朝鮮) 조정에서는, 이 말이 진실이 아님을 변명(辨明)하는 사신(使臣)을 보내야만 했는데, 평상시에 보내지는 사신(使臣)과는 근본적으로, 그 임무(任務)가 다른 엄청난 사건인 것이었다.

그 때 당시 명(明)나라의 사정을 보면, 대내적(對內的)으로 양응덕(楊應德)의 난(亂)이 있고, 조선(朝鮮)이 왜란(倭亂)을 당하여서 어쩔 수 없이 구원병(救援兵)까지 보내 주어 국력(國力)이 매우 약해져 있을 때에 이러한 글이 황제께 전해지니, 여러모로 조선(朝鮮)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조선(朝鮮)의 조정에서는 나라의 안위가 위급(危急)함에 이에 대처(對處)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심(苦心)을 하였겠는가?

크게 고심한 끝에, 그 당시 문장(文章)으로 가장 총망받는 사람을 가려 뽑아서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에 변무진주사(辨誣陳奏使)에,

정사(正使)로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선생(우의정)이,

부사(副使)로는, 월사(月使) 이정구(李廷龜) 선생(이조판서)이,

서장관(書狀官)으로는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인 해월(海月) 선생이 뽑히게 되어, 10월 21일(癸酉)일에 서울 서소문 모화관(慕華館)을 출발하게 되었다.

11월 10일 아침 의주(義州)에 도착하였으며, 12월 6(丙辰)일 압록강을 건넜다.

1599(선조32년, 己亥)년 1월 23(甲辰)일 비로소 북경에 도착하여 황성(皇城) 동문(東門)에 들어가서 옥하관(玉河館)에 유숙하게 되었다.

이 당시 변무진주사(辨誣陳奏使)로 가는 사신(使臣)들의 입장은, 이 문제(問題)를 깨끗하게 아무런 오해없이 해결(解決)하지 못하고는,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절박(切迫)한 입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 사신(使臣)들이 명(明)나라 황제에게 올리는 조선(朝鮮) 국왕의 주문(奏文)에는, 주권(主權)을 가진 나라로서는 차마 밝히기가 거북한 내용(內容)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첫 문장(文章)에 조선(朝鮮) 국왕은 이와 같이 오명(汚名)을 입게 되었으니, 삼가 석고대명(席藁待命), 즉 거적을 깔로 업드려 처분을 기다린다고 하며, 용서를 간걸(懇乞)한다고 하였다.

또한 사신(使臣) 일행(一行)은 명(明)나라 정부의 오부(五府), 육부(六府), 구경(九卿), 육과(六科), 십삼도(十三道)의 관청(官廳)을 두루 찾아다니며, 우리 나라의 억울한 사정을 기록한 주문(奏文)을 제출(提出)하고는 우리의 억울(抑鬱)함을 토로(吐露)하였다.

2월 5(乙卯)일 동궐(東闕)에서 어전회의가 있었는데, 동궐(東闕) 출문 밖에서 우리 나라 사신(使臣) 일행(一行)이 그 계단 앞에서 나아가 꿇어 업드려 절을 하며, 우리 나라의 원통(寃痛)한 일을 설명하였다.

이 때 소대형(蕭大亨) 형부상서(刑部尙書)가 업드려 있는 우리 사신일행(使臣一行)을 보고, 사람을 시켜서 일어나게 하였으며, 업드려서 절(拜禮)를 하지 말고, 다만 양읍(兩揖)만을 하라고 하자 다시 일어나 양읍(兩揖)을 하고는 다시 나아가 업드려 절을 하며 억울(抑鬱)함을 밝혔다고 한다.

또한 예부조방(禮部朝房: 朝臣들이 朝會 때를 기다리며 모여 있던 방, 대궐 문 밖에 있었음) 문밖에서 좌우(左右)로 나뉘어 서 있다가 계단 아래로 나아가, 두 번 절을 하고 또한 읍(揖)을 한 다음 무릎을 꿇고 나아가 글을 올리며 이른바 진정을 하였다(行兩拜作損因跪呈咨文).

이 때 예부좌시랑(禮部左侍郞) 여계등(余繼登)이 크게 불평을 말하며, 우리 사신(使臣) 일행(一行)에게 이르기를 퇴거(退去)하라고 지시(指示)하여, 감히 말도 못하고 물러났다고 하였다(不敢開說而退仍)

이 기록(記錄)을 통하여 약소국가(弱小國家)의 설움을, 해월(海月) 선생은 뼈저리게 느낀 것을알 수 있다.

당시 우리 나라 사신들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2월 25일(乙亥)일 병부(兵部)에서 보내 온 공문서인 자문(咨文)에는, 우리 나라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같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자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었으나 마침내는 일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당시에 우의정(右議政)으로 상사(上使)였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선생이, 같이 갔던 사신(使臣) 일행(一行)들과 어려웠던 상황에 대하여 주고 받은 이야기를 백사(白沙) 선생의 문집(文集) 23권 22장에 밝혀 놓았는데, 그 글을 소개하겠다.



『二十八日 將往兵部 余出言曰 此大事 月沙以爲 必無不成

李譯以爲 必不成 必有害 吾以爲 必不成亦無害 獨書狀 無決語

行示?白 且觀吾儕先見如何 海月曰吾意與上使同

仍詣兵部 見蕭尙書呈文 且陳其由則尙書曰 聖旨不於前議准下

而只於後議准下 不敢以前議成咨 吾等退出外庭 余行ⅵ顧月沙

獻之曰 吾不云乎 今竟 如何 尙書笑言 一一與吾言 妙合 今日方知

公騷陞之害也 恨不習吏事 月沙笑曰 上使不以不成爲念 而反以先見

爲行耶 海月公曰 我亦云如此 衆皆斥之曰 因人成事

海月曰 託以叩謝非吾策耶 余曰 此則當以公爲盟主』



2월 28(戊寅)일 병부(兵部)로 가면서 내(白沙)가 말하기를 ‘이는 큰일(大事)입니다.

월사(月沙, 李廷龜)는 이 일은 틀림없이 이루어지지 않을 리가 없다고 하였으며, 또한 이언화(李彦華) 역관(譯官)은 반드시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해(害)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으며, 내(白沙) 생각에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해(害)는 없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오직 서장관(書狀官) 해월(海月)만이, 아무런 결연한 말이 없으니,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의 상황(?백: 옳고 그른 시비)을 밝혀 주고, 또한 우리 일행(一行)들의 선견(先見)이 어떠한지도 보아 주기를 바라오‘ 하니

해월공(海月公)은 내(海月) 뜻은 상사(上使)와 같으므로, 이에 병부(兵部)에 나아가서 형부상서(刑部尙書) 소대형(蕭大亨)을 만나 뵙고 글을 올리며 그 연유(緣由)를 진정한즉,

형부상서(刑部尙書) 소대형(蕭大亨)이 이르기를, 「천자(天子)의 뜻(聖旨)이 앞서의 논의(前議: 우리나라의 입장)는 비준(批准)하지 않고, 후의 논의(後議: 뇌물을 주어 왜(倭)를 끌어들였다는 주장)만을 비준(批准)하였는데, 어찌 감히 천자(天子)가 비준(批准)하지 않은 앞서의 논의(前議)를 공식(公式) 문서(文書)로 작성할 수 있겠느냐」 고 하였다고 했다.

우리 일행(一行)들은 바깥의 뜰로 나와서 가다가 내(白沙)가 월사(月沙)를 돌아보며 농담삼아 말하기를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경우는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형부소상서(刑部蕭尙書)가 하는 말이 일일(一一)이 내 말과 묘하게 부합(符合)하지 않는가? 금일에 바야흐로 그대(月沙)의 관직이 갑자기 오른 것이 해(害)가 됨을 알겠으니, 그대가 관리의 일(吏事)을 익히지 못했음이 한(恨)스럽다.’ 했더니,

월사(月沙)가 웃으면서 ‘상사(上使)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괘념치 않고 오히려 선견(先見)이 맞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십니까?’ 라고 말했다.

해월공(海月公)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모두다(衆皆) 그렇지 않다고 말을 막으며(斥), 인인성사(因人成事: 즉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해서 일이 성사된 것)입니다.‘ 라고 말하자,

이에 해월공(海月公)이 말하기를 ‘공손히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면 부탁한 것이지 달리 나의 비책(秘策)이 있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에 내(白沙)가 말하기를 ‘이와 같은 큰 일은 당연히 그대 해월공(海月公)이 맹주(盟主: 동맹의 주재자)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



백사(白沙) 선생이 해월(海月) 선생을 왜 맹주(盟主)라고 했는지를 알려면, 인인성사(因人成事)라는 말이 뜻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사기(史記)의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 나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때, 진(秦)나라가 한단(邯鄲)을 포위하였을 때, 조(趙)나라는 평원군(平原君)을 초(楚)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합종(合從: 굳게 맹세하여 서로 응함. 초(楚)와 조(趙)나라가 동맹하여 진(秦)나라에 대항하자는 의견)을 하고 구원을 요청하려 하였다.

이에 평원군(平原君)은 그의 문하(門下)에 식객으로 있는 이십인(二十人)과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문사와 말로써 승리를 얻을 수 없다면 궁궐 안에서 초(楚)나라 왕을 협박(脅迫)하여 피를 나누어 마셔서라도 반드시 합종(合從)을 정하고 돌아오겠다. 선비는 다른데서 구할 필요가 없다. 문하(門下)의 식객 중에 골라도 충분하다.’

그리고는 19명을 골랐는데 그 나머지 한 명은 알맞은 사람이 없어서 채울 수 없었다. 이 때 문하(門下)에 모수(毛遂)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원군(平原君)에게 자기 스스로를 칭찬하며 데려가 주기를 청했다.

평원군(平原君)이, 대저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처하는 것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어서 그 끝이 즉시 밖으로 나타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며, 3년 동안 있었다는 데도 모수(毛遂)에 대한 칭찬을 한 번도 못 들었으니 그냥 머물러 있으라고 했다.

그러자 모수(毛遂)는 일찍부터 모수(毛遂) 자신을 주머니 속에 처할 수 있게 했다며 송곳의 머리까지 튀어 나왔을 것이요, 그 끝만 빠져 나오는 정도에 불과(不過)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평원군(平原君)은 모수(毛遂)와 함께 가기로 하였다.

다른 19명은 처음에는 모수(毛遂)를 비웃었으나, 초(楚)나라로 가면서 토론을 하고는 모수(毛遂)에게 설복 당하였다.

평원군(平原君)이 초(楚)나라 왕과 더불어 합종(合從)을 하는데, 평원군(平原君)의 끈덕진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 이해(理解)를 따지느라, 해가 뜰 때 시작한 토론이 해가 중천에 뜨도록 결말이 나지 않았다.

이에 19명이 모수(毛遂)더러 나서 보라고 하자, 단 아래에 있던 모수(毛遂)는 검(劒)을 잡고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가, 평원군(平原君)에게 합종(合從)의 결과는 두 마디면 결정(결정)이 날 것인데 어찌하여 결말(結末)을 짓지 못하는지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초(楚)왕이 주인(平原君)과 더불어 말하고 있는데 왜 나서냐면 꾸짖었다. 이에 모수(毛遂)는 검(劒)을 부여잡고 앞으로 다가서며,

왕께서 나를 꾸짖고 큰소리치는 것은 초(楚)나라의 막강한 군사의 힘을 믿고 하는 짓이외다. 그러나 지금 나(毛遂)와 왕과의 거리는 십보에 불과하여, 막강한 군사(軍士)의 힘을 믿을 수 없으니, 왕의 목숨은 모수(毛遂)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라며, 주인이 앞에 있는데 자기를 꾸짖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또한 탕(湯)왕과 문(文)왕이 제후를 신하로 둔 것이 사졸(士卒)이 많아서가 아니며, 초(楚)나라 땅이 사방 천리이고 백만(百萬) 군사를 가진 초(楚)나라의 힘을 천하에 감히 대적(對敵)할 나라가 없다며 저 진(秦)나라의 백기(白起)란 놈은 작은 더벅머리에 불과하지만, 한 번 싸워서 언(鄢)과 영(郢)을 점령하고, 두 번 싸워서 이릉(夷陵)을 불태우고, 세 번 싸움에 왕의 부왕(父王)을 패배시켜 치욕을 안겨주지 않았소이까? 이것은 씻을 수 없는 백대의 맺힌 한(恨)이라. 조(趙)나라의 수치로 여기는 바이다. 그렇다면 합종(合從)과 동맹(同盟)은 사실상 초(楚)나라를 위한 것이지 조(趙)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대들며 조리(條理)있게 따졌다.



『王曰 唯唯 誠若先生之言 謹奉社稷以從 遂曰 取鷄狗馬之血來

捧銅盤 詭進曰 當?血以定從 次者吾君 次者遂 左手奉盤

右手招十九人 ?血於堂下曰 公等 碌碌 所謂 因人城事者也

平原君 定從歸 曰毛先生 一至楚 使趙 重於九鼎大呂 以遂 爲上客』



초(楚)왕은 모수(毛遂)의 말을 듣더니, 과연 그렇도다. 듣고보니 선생의 말이 사리에 맞는도다. 삼가 사직(社稷)을 받들어 그대의 말에 따라 동맹(同盟)을 맺으리라고 말했다.

이에 모수(毛遂)는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 오도록 하였고, 피를 담은 동반(銅盤)을 받들어 무릎을 꿇어 엎드리면서, 왕께서 맹약(盟約)의 주인공으로서 먼저 피를 마십시오. 다음은 우리 임금이요, 다음은 이 모수(毛遂)가 먹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렇게 피를 마시고 나서, 왼손에 쟁반을 들고 오른손으로 19명의 동반자를 불러 전당 아래에서 피를 마시게 하면서, 그대들은 작은 돌모양으로 주관(主觀)이 없이 남을 추종(追從)하는 쓸모없는 존재(存在)로다. 이른바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여 일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라고 말하였다.

평원군(平原君)은 동맹(同盟)을 약정(約定)하고 돌아와서 말하기를, 모(毛) 선생이 한 번 초(楚)나라에 가 주신 덕분에, 조(趙)나라를 구정(九鼎: 하, 은, 주의 3대 보물)과 대려(大呂: 周왕조의 큰 鍾으로 周왕조의 보물)보다도 더 존중(尊重)받도록 만들었다며, 모수(毛遂)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초(楚)나라와의 동맹(同盟)이 체결되지 않으면, 조(趙)나라의 사직(社稷)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 난항(난항)을 겪고 있던 초(楚)나라와의 동맹(同盟)을 이루어낸 것은, 결국 모수(毛遂)인 것이다.

평원군(平原君)을 따라간 20명의 식객 중 학문(學文)과 무예(武藝)를 겸비해서 먼저 뽑힌 19명은 동맹(同盟)을 맺는데 실질적(실질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모수(毛遂) 혼자 동맹(同盟)을 성사(성사)시켰으니 모수(毛遂)의 힘에 의지하여 일이 이루어진 것을 일러, 인인성사(因人成事) 즉 남을 의지하여 일을 성사시킨 것이라고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월(海月) 선생과 같이 갔던 일행들 모두가 인인성사(因人成事)라는 말을 인용(引用)하여, 그 당시의 대사(大事)는 해월(海月) 선생 혼자의 힘으로 해결(解決)한 것이라고 말하니, 백사(白沙) 선생도 당연(當然)히 이 일에 있어서는 해월공(海月公)이 맹주(盟主)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당시 해월(海月) 선생의 은사일록(銀槎日錄)을 보면, 당시 명(明)나라 조정(朝廷) 관리들이 우리 조선(朝鮮)을 보는 시각(視覺)과 관점(觀點)이 어떠했는지를, 각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의견(의견)을 하나하나 들어 기록(記錄)하고 있다.

당시에 명(明)나라 조정(朝廷) 안에서는, 우리 나라에 대하여 비판적(批判的)인 시각(視覺)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던 것이다.

이 때 명(明) 조정에서 우리 나라에게 우호적(友好的)인 형부상서(刑部尙書) 소대형(蕭大亨)을 해월(海月) 선생이 찾으니, 소대형(蕭大亨)은 조선(朝鮮)이 올린 문서(文書)를 회의(會議)에서 통과시키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되지 않으니, 이러이러한 사람에게 이 내용(內容)을 알려서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해월(海月) 선생은 이미 그들에게 전(傳)했다고 하였다.

해월공(海月公)이 뛰어난 문장력(文章力)과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사실상 거의 혼자의 힘으로 이 사건을 처리한 것을, 백사(백사) 선생은 그의 문집(文集)에다 밝혔던 것이다.

당시 해월(海月) 선생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했던 사람들 중, 우리 나라를 도왔던 우호적인 인사들을 든다면, 심 각로(沈 閣老: 재상), 조 각로(趙 閣老), 태학사(太學士) 조지고(趙志皐), 이부상서(吏部尙書) 이대(李戴), 호부상서(戶部尙書) 양준민(楊俊民), 형부우시랑(刑部右侍郞) 동유(董裕), 공부상서(工部尙書) 양일괴(楊一魁), 통정사사(通政司使) 범륜(范崙), 이부도급사중(吏部都給事中) 조완벽(趙完壁), 호부도급사(戶部都給事) 포현첩(包見捷), 예부좌급사(禮部左給事) 유여택(劉餘澤), 병과도급사(兵科都給事) 장보지(張輔之), 계유근(桂有根) 형과우급사중(刑科右給事中) 양응문(楊應文), 공부도급사(工部都給事) 한학신(韓學信), 형부상서(刑部尙書) 소대형(蕭大亨)...... 등등이었다.

그 당시 소대형(蕭大亨) 형부상서(刑部尙書)가 가장 앞장 서서 우리 나라 입장(立場)을 지지(支持)해 준 분으로, 명(明)나라 조정에서도 실세(實勢)로 아주 돋보이는 분이라고 해월(海月) 선생은 밝히고 있다.

또한 당시 우리 나라 역관(譯官)인 이언화(李彦華)가 해월(海月) 선생을 가장 많이 도왔던 것이다.



그 당시 해월(海月) 선생은 사신(使臣)으로 명(明)나라에 가서 많은 일화(逸話)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만을 소개하겠다.

해월(海月) 선생은 우리 나라의 입장을 명(明)나라 조정에서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하여, 혼자 수많은 조정(朝廷) 관리들과 접촉하고, 우리의 입장(立場)을 설명하였던 것이다.

그 때 만나서 그들이 우리 나라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의견과 인상을 자세히 기록(記錄)으로 남겨 두었는데,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12권에 자세(仔細)하게 기록(記錄)되어 있다.

사실 해월(海月) 선생은 명(明)나라 조정(朝廷)의 여러 관청을 다니면서, 진정서(陳情書)를 전달하고 우리 나라의 무고(誣告)를 진설(陳設)하고, 통변(通辯)하자, 각로(閣老: 재상)와 고위관리(高位官吏)들은, 그의 언변과 논술(論述)이 분명하고 예절바른 태도에 모두들 감탄하고는 다투어 서로 차와 술을 대접하며 나라의 치욕(恥辱)을 벗겨 줄테니, 공(公)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慰勞)하였다고 한다.

또한 사신(使臣) 일행(一行)은 곳곳에서 연회(宴會)의 초청(招請)을 받았지만, 우리 임금의 오명(汚名)을 씻기 위하여, 변무진주사(辨誣陳奏使)로 갔기 때문에, 명나라 조정의 예부(禮部)에다 연회(宴會)에 초청(招請)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는 면안정문(免晏呈文)을 제출하였다.

멀리서 온 사람을 받들어 위로(慰勞)하며, 지극히 성대(盛大)하게 잔치를 베풀어 주니 그 은혜가 도탑지만, 고국(故國)을 떠나올 때 임금이 가슴을 치고 침식(寢食)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것을 보았으며, 군신상하(君臣上下)가 몹시 두려워 몸둘 바를 모르고 있는 이 때에, 어찌 신(臣)만이 홀로 고맙게 베풀어 주는 잔치를 즐길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은 간곡(懇曲)한 내용의 글로, 예부(禮部)에서 연회(宴會)의 초청을 금(禁)하게 하여 주기를 바라는 문서를 2월 5(乙卯)일에 제출하였던 것이다.



당시 명(明)나라의 관상가(觀相家)가 조선(朝鮮)의 사신(使臣) 일행 중 해월(海月) 선생을 가리키며,

『時相者來 使行 指先生曰 黃書狀生於東國 稟得萬里氣像 甚可異也

在座人曰 書狀生於東海 世居小國 何以稟得萬里氣也

相者曰 信不誣矣. 稟生東海之氣 書狀之量 河海弘量矣 嘖嘖稱歎』



‘황서장관(黃書狀官)은 동국(東國)에서 태어났지만, 만리기상(萬里氣像)을 타고 났으니 매우 이상합니다.」 라고 하자, 함께 같이 있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황서장관(黃書狀官)은 동해(東海)에서 태어나 대대로 소국(小國)에서 살았는데, 어찌 만리기상(萬里氣像)을 타고 태어났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상가(相者)가는,

‘참으로 속일 수가 없습니다. 동해(東海)의 기(氣)를 받고 태어난 서장관(書狀官)의 도량(度量)은 하해(河海)와 같은 분입니다.’ 라며 큰 소리로 탄복(탄복)을 했다고 한다.



또한 이에 따른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에는 전(傳)하는 일화(逸話)가 있다.

그 당시 이러한 소문이 널리 퍼졌는데, 명(明)의 신종(神宗) 황제도 해월(海月) 선생에게

‘조선(朝鮮)은 삼천리(三千里) 강토(疆土)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만리정기(萬里精氣)를 타고나서 명(明)을 치려 하느냐?’

라고 물었다 한다. 만일 여기서 바로 대답을 제대로 못하거나, 머뭇거린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은 허사(虛事)가 될 뿐만 아니라, 나라에 커다란 재앙(災殃)이 되는 위급(危急)한 상황(狀況)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조선(朝鮮)이 일본(日本)과 연합하여, 고구려(高句麗)의 옛 땅을 찾겠다는 오해(誤解)로 인(因)하여 명(明)의 황제 앞에 해명(解明)하기 위해 갔다는 말이다.

그러나 해월(海月) 선생은 그 자리에서 즉시 대답하였다.

‘예 신(臣)의 집 앞에는 만리창해(萬里滄海)가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참으로 절묘(絶妙)하고 적절(適切)했던 것이다. 그러자 신종(神宗) 황제는 무릎을 치면서,

‘조선(朝鮮)에는 너 하나밖에 없구나.’ 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이름이 지어져 「너 하나밖에 없다」 는 뜻의 「여일(汝一)」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사히 일을 해결하고 귀국하자, 집으로 돌아와서는 즉시 동해(東海)가 바로 보이는 마악산(馬嶽山) 중턱에다, 거주(居住)하고 있는 집과 같은 집을 지어 놓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제 해월(海月) 선생의 집은 정남향(正南向)이라, 바다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理由)는 명(明)의 조정에서 조선(朝鮮)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황제(皇帝)를 농락(籠絡)했다며 트집을 잡을까 하여,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에 집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집은 몇 십년 뒤에 화재(火災)로 소실(燒失)되었는데, 그 집터가 지금은 밭으로 사용되고, 그 잔해가 아직도 간혹 나오고 있다고 후손(後孫)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해월(海月) 선생이 명(明)나라에서 일을 마무리짓고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형부상서(刑部尙書) 소대형(蕭大亨)이 이르기를,

명(明)나라의 군대가 조선(朝鮮)에 오랫동안 파견되어 있지만, 명(明)자라 조정 역시도 서쪽의 적(敵)과 북쪽의 오랑캐 때문에 근심이 많다고 하였다,

그러니 속히 조선(朝鮮)에 파견되어 있는 군대를 철수(撤收)하여야만 할 입장이니, 조선(朝鮮)은 명(明)에만 의지(依支)하지 말고, 스스로 강(强)해져서 자립하라고 하였다(自强自立).



1599(선조 32년, 己亥)년 3월 18(丁酉)일, 북경을 출발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4월 24(癸酉)일 압록강을 건너고, 4월 25(甲戌)일에 의주에 머물렀다.

윤 4월 기해(己亥)일에 복명(復命)을 했다.



이처럼 해월(海月) 선생은 국가에 큰 공을 세우고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는 한유(韓愈)의 여우양양서(與于襄陽書)에 나오는 다음 구절들을 보면, 그 이유(理由)를 잘 대변(代辯)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士之享大名顯當世者 莫不有先達之士負天下之望者爲之前焉

士之能垂休光照後世者 亦莫不有後進之士負天下之望者爲之後焉

莫爲之前 雖美而不彰 莫爲之後 雖盛而不傳』



선비(士)로서 명성(名聲)을 올려 그 시대(時代)에 유명하게 된 자는, 그 사람보다 선배(先輩)로서 천하(天下)의 인망(人望)을 갖고 있는 자가 앞서서 추천(推薦)하지 않는 일은 없고, 또 선비(士)로서 뛰어난 공적(功績)을 남겨 후세(後世)까지 명성(名聲)을 나타내는 자는, 그 사람의 후배(後輩)로서 천하(天下)의 인망(人望)을 얻고 있는 자가 뒤에서 이를 밀어 세우지 않는 자가 없다.

앞서서 추천(推薦)하지 않으면, 후배(後輩)는 아무리 아름다운 재주와 덕(德)을 지니고 있어도 세상에 나타날 수가 없고, 뒤에서 이를 밀어 세우지 않으면, 선배(先輩)의 사업이 아무리 성대(盛大)해도 후세(後世)에 전해지지 않는다(不傳).



대사헌(大司憲)이신 이세택(李世澤) 선생께서는, 그 당시의 세분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기술(記述)하고 있다.

세 분이 서로 시가(詩歌)나 문장(文章)을 주고 받은 글들이 주옥(珠玉)같이 남아 있는데, 그 문장(文章)에는 그 덕(德)과 기상(氣像)이 가히 존경(尊敬)하고 숭배(崇拜)할만 하다고 하며, 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兩沙遺稿 刊行已久 遍滿東國 殆家有人誦 而海月之文

尙湮晦無傳 豈非 吾党之所 可慨然者那』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선생과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선생의 유고(遺稿)는 이미 간행(刊行)되어 우리 나라에 널리 퍼져 있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유독 해월(海月) 선생의 글만이 오히려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전(傳)해지지 않으니, 어찌 우리들이 이와 같이 편파(偏頗)적인 일을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발문(跋文)을 쓰신 것이다. 또한 발문(跋文) 속에 해월(海月) 선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故其發爲詞藻 文華者 ?拔特達 汗瀾不可以涯? 詩尤精麗

爾雅?? 有唐宋人聲氣 諷詠遺什 於曠世之下 猶可象想

其襟靈爽朗 器量涵泓 直與滄海明月 輝映?澈 同流

其光影者 抑何奇也』



즉 그의 시문(詩文)을 짓는 재주를 말하자면,

그의 문장(文章)은 여러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연 뛰어나서, 한 번 물결이 일면, 그 끝간 데를 알 수 없으며,

그의 시(詩)는 더욱 정묘하고 고우니(精麗), 문장이나 언어가 아름다우며(爾雅), 말(馬)이 빨리 달리는 것과 같아서(駸駸)

당송(唐宋)인의 득의(得意)한 마음이나 기개(氣槪)를 볼 수가 있으며, 지금까지 전해진 문집(文集) 속에 있는, 그의 시(詩)를 읊조려 보면,

또한 다음과 같이 상상(象想)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의 마음 속에는 매우 신묘(神妙)하며 신령이 영험하고,

그의 기량(器量)은 깊고 깊어 잠겨서 밝은 모양인데,

말하자면 맑고 푸른 바다(滄海)에 밝은 달(明月)이 밝게 비추니

그 밝게 비추는 달빛과 그 맑은 바닷물이 하나가 되어(同流) 흐르는 모습.

그 물 속에 달그림자, 아! 얼마나 아름답고 기이한가?

라고 표현하고 있다.



『雖然此在公特餘事耳 其行治之? ?出倫類 孝悌通於神明

忠義根於性? 才足以贊猷華國 識足以正誼明理』



비로 그러하나 이는 공(公)에게 다만 여사(餘事: 여가로 하는 일)일 뿐이다.

그 스스로를 다스리는 그 아름다움은 사람들 가운데 돋보이니,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형제를 받들어 순종한 일은 신명(神明)과 통(通)하고, 그의 충성(忠誠)과 절의(節義)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떳떳한 성품에 기인하며, 그의 재주는 족히 임금을 도와 나라를 빛낼 만하고(華國), 식견(識見)으로는 도리를 바르게(正誼) 하고, 이(理)를 흡족히 밝힐(明現) 만하다고 하였다.



『自?勵蔚 爲當世名儒 是不但淸文 奇氣之聳 服人觀聽而已也』



스스로 힘써 학문(學文)을 닦아 우뚝하게 당세(當世)의 이름난 선비(名儒)가 되니, 이는 그의 맑고 깨끗한 글(淸文)에는 기이(奇異)한 기운(氣運)이 높이 서려 있어(奇氣之聳), 그의 글을 보고 듣는 사람들을 삼가 두렵게 하며, 또한 감복(服人)케 하는 것을 더욱 더하여 준다고 하였다.



또한 해월(海月) 선생은, 외진 벽지(僻地)에서 늦게 태어나서,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지 못한 것을 못내 크게 아쉬워하였다고 한다.

해월(海月) 선생은 1583년인 선조 16년 8월, 그가 성균관 진사(辰巳) 시절에 우리나라에 오현(五賢)이신, 이황(李滉),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등을 문묘(文廟: 공자를 모신 사당)에 제향할 수 있도록 청(請)하는 상소문을 올려, 공론화를 시켰는데, 조정(朝廷)에서는 의심(疑心)스러워하며,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에는 이루어지리라고는 믿지 않고 후일을 내다보고 하였다고 한다.

또한 1585년인 선조 18년(乙酉) 봄에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옥계서당(玉溪書堂)을 찾아가서 배(拜)를 올렸다고 한다.

그 해 10월에 별시을과(別試乙科)에 1등으로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關) 검열이 되었으며, 1586년 선조 19년 1월에 휴가를 받아 부모님을 찾아 뵙고, 선성(宣城) 즉 지금의 안동의 예안으로 가서 퇴계(退溪) 선생 유고(遺稿)의 편집과 교정을 보았던 것이다.

1599년 선조 32년 5월에 선생께서는 중훈(中訓)대부로 올랐으며, 이 때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을 찾아 뵙고 가을에 도산간역소(陶山刊役所) 감독직을 맡고 있었는데, 이 때에 퇴계(退溪) 선생의 문집(文集)을 간행(刊行)할 때, 물자조달(物資調達)을 하며, 일을 도왔다고 한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3권 9장 39편에,

숙모당연종애편(叔母當年鍾愛偏) 앙연수기자초년(昻然秀氣自齠年)

상비벽군무인걸(常悲僻郡無人傑) 만희쇠문득이현(晩喜衰門得爾賢)

무은일반방표울(霧隱一班方豹蔚) 풍박만리저붕건(風搏萬里竚鵬騫)

전춘척독재상문(前春尺牘纔相問) 가인금래견차천(可忍今來見此阡)



숙모(叔母: 말세의 어머니)가, 그 당시 매우 귀여워하였는데,

이를 갈 어린 나이인데도, 밝고 아름다움이 빼어나구나.

늘상 마음이 아픈 것은, 후미진 고을에 인걸(人傑)이 없다는 것이다.

뒤늦게(말세의 끝) 기쁘게도 쇠락(衰落)하니 가문에, 그대와 같은 현인(賢)을 가지게 되었는데

온통 안개가 가리우더니, 때가 이르러 표범의 무늬가 완연하게 드러는구나(豹蔚).

만리(萬里) 밖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날개치며 다가오더니, 잠시 있던 붕(鵬)새가 들어올리는 것은

춘(春) 앞으로 보낸 편지이니, 비로소 춘(春)이 자세히 보게 되는구나.

가히 마음을 억누르고 지금에 와서 보니, 여기는 무덤길이구나.



이 시(詩)를 풀이하는 글에서 해월(海月) 선생이 조카의 죽음을 애도하며 묘지(墓地)를 잡기 위해, 울진읍(蔚珍邑) 인근의 정림사(井林寺)를 가면서 지은 시(詩)로 설명되어 있다.

이 시(詩)를 잘 보면 숙모(叔母)란 단순한 의미로 쓴 말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다. 말세(末世)의 어머니, 즉 하나님을 상징적(象徵的)으로 표현(表現)한 말이다.

한 아이를 매우 귀여워하였는데, 참으로 이를 갈 어린 나이지만은 착하고 빼어난 기운이 높이 오르는 아이라는 것이다.

이 시골 벽촌에 인재(人才)가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아주 쇠락(衰落)한 가문(家門)에서 이와 같은 현인(賢人)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기쁘다고 한 것이다.

안개가 그 표범(豹)의 아름다움을 모두 가려 놓았지만, 때가 이르니 그 표범의 아름다운 무늬가 완연하게 세상에 드러난다고 하였다.

만리(萬里) 밖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날개를 치며 다가오더니, 그 붕(鵬)새가 들어올리는 것은,춘가(春家) 앞으로 보내온 편지인데, 그 춘(春)이 그 편지를 받아서 자세(仔細)히 읽어 보게 된다는 것이다. 가히 참지 못하고 지금 와서 보니, 이 길은 무덤길이구나 하였다.

여기에는 무엇인가 중요한 내용(內容)이 들어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벽촌에 이렇다 할 인걸(人傑)이 없었는데, 뒤늦게 말세(末世)에 쇠락(衰落)한 즉 영락(零落)한 가문(家門)에서 이러한 현인(賢人)이 나타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라는 것과 그 비유로 안개 속에 숨겨져 있던 표범(豹)이 때가 되니 그 표범(豹)의 아름다운 모습이 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만리(萬里) 밖의 붕(鵬)새가 편지를 전해 주는데, 그 편지는 춘가(春家)의 춘(春) 앞으로 보내는 편지인데, 그 춘(春)이 비로소 붕(鵬)새가 전해 준 그 편지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가히 마음을 억누르고 지금에 와서 보니 여기는 무덤길이라고 하였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이미 화천(化天)하셔서, 그 아들인 춘(春)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월(海月) 선생은 전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시(詩)에서 해월(海月) 선생이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그 의미를 찾아보길 바라네.“ 하자 한 사람이 질문을 하였다.

“그 표범(豹)을 안개가 가려 놓았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라고 하자

“주역(周易)의 택화혁(澤火革)을 보면 혁(革)이란 바로잡는 것으로, 혁신(革新), 혁명(革命), 변혁(變革)의 혁(革)자인 것이다.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해 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혁괘(革卦)의 (九五)에,

『大人虎變 末占有孚 象曰 大人虎變其文炳也』



(上六)에,

『君子豹變小人革面......

象曰君子豹變其文蔚也 小人革面 順以從君也』



이 말은 대인(大人)은 호랑이(虎)처럼 개혁한다. 점(占)을 치지 않아도 천하(天下) 만민(人)의 신뢰를 받는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대인(大人)은 호랑이처럼 개혁(改革)한다 함은 그 무늬가 뚜렷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상육(上六)에 군자(君子)는 표범(豹)처럼 개혁하고, 소인(小人)은 면(面)을 바꾼다.

또한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군자(君子)는 표범(豹)처럼 개혁(改革)한다는 말은, 표범(豹)의 털 무늬가 아름답고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소인이 면(面)을 바꾼다는 말은, 뜻을 새롭게 해서 군주(君主)에게 기꺼이 복종한다는 의미라고 하였다.



대인(大人)이 호랑이(虎)처럼 개혁(改革)한다 함은, 대인(大人)이 난(亂)을 다스려 천하(天下)를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함이, 호랑이(虎)의 가죽무늬처럼 분명하다는 것이다.

위대한 도덕(道德)과 재능(才能)을 갖추고 있는 대인(大人)은, 혁명(革命)을 완수하여 구습(舊習), 구악(舊惡)을 제거하는데, 마치 가을이 되어 호랑이(虎) 털이 윤기 있고 색채가 선명한 털로 바뀌는 것처럼 국가(國家)의 법률제도(法律制度)나 인심(人心)의 면목을 새롭게 하여 아름다웁게 바꾼다는 것이다.

대인(大人)의 혁명(革命)은, 하늘에 따르고 사람에 응하는 것으로, 천하(天下)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 대인(大人)의 지성(至誠)스러운 진실을 믿는다.

그것은 점(占)쳐 볼 것까지도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군자(君子)는 표범(豹)처럼 개혁(改革)한다고 하였다.

또한 호랑이(虎)와 마찬가지로, 가을이 되면 역시 윤기 있는 아름다운 털로 바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호변(虎變), 표변(豹變)이라는 말은, 호랑이(虎)와 표범(豹)이 가을이 되어 털갈이 하고 일변(一變)해서 아름다운 모양을 나타내는 것을, 대인군자(大人君子)가 혁신(革新)을 통하여, 상극(相剋)과 모순(矛盾)을 제거하여 천하(天下)를 정도(正道)로 돌아가게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은연중에 이 후미진 시골 벽지(僻地)에 인걸(人傑)이 없었으나, 말세(末世)에 한 아이가 태어나서 이토록 영락(零落)한 즉 쇠락(衰落)한 가문(家門)을 이어받아 세우는데, 이를 현인(賢人)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그 현인(賢人)을 안개 속에 숨겨져 있는 표범(豹)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 안개 속에 숨어 있는 표범(霧豹)이란 말은, 옛 시(詩) 속에 등장하는 말로, 남산(南山)에 사는 표범은 그 털의 무늬가 더렵혀질 것을 두려워하여 안개와 비가 내리면 굴 속에 숨는다는 데서, 숨어서 이름을 온전히 하거나 은거(隱居)하여 벼슬을 하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인 것이다.

즉 해월(海月) 선생의 후손(後孫) 중에, 이 쇠락(衰落)한 가문을 이어나갈 한 현자(賢者)가 있는데, 즉 대인(大人)이고 군자(君子)인 이 현자(賢者)가, 안개 속에 숨어서 은거(은거)하시다가 때라 이르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개혁(改革)한다는 것을 전(傳)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어질 현(賢)자를 잘 기억해두기 바란다. 특히 이 현(賢)자가 예언서(豫言書)에서는, 자주 눈에 뜨이는데 아주 큰 뜻이 들어있는 글자인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밝혀 보겠다.



다음은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후세(後世)에 어진 이(賢者)를 위하여 전(傳)하는 최고운결(崔孤雲訣)을 보도록 하자.

최치원(崔致遠 857~?, 신라 46대 문성왕 19~?) 선생은 신라(新羅) 말기의 학자(學者)이자 문장가(文章家)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고운(孤雲), 호(號)는 해운(海運), 경주 사량부(沙梁部) 출신인 견일(肩逸)의 아들이다.

신라 48대 경문왕(景文王) 8년인 868년에, 12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 당(唐)나라에 유학(遊學)하여 7년만이 874년에 18세의 나이로 예부시랑(禮部侍朗), 배찬(裵瓚)이 주관한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신라 49대 헌강왕(憲康王) 2년인 876년에, 당(唐)나라 선주(宣州) 표수현위(漂水縣尉)가 되었으며, 그가 문명(文名)을 천하(天下)에 떨치게 된 것은, 879년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고변이 제도행영병마도통(諸道行營兵馬都統)이 되어 이를 칠 때, 고변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서기의 책임을 맡으면서부터 였다.









그는 885년 귀국할 때까지 17년 동안 당(唐)나라에 머물러 있었는데, 29세 때 신라에 돌아오자, 헌강왕(憲康王)에 의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侍郞知瑞書監事)에 임명되었다.

신라(新羅)의 골품제도에 의한 진골 귀족 중심의 독점적인 신분체제(身分體制)의 한계(限界)와 국정(國政)이 문란(紊亂)함을 깨닫고, 외직을 원하여 890년에 대산군(大山郡: 지금의 전라북도 태인), 천령군(天嶺郡: 지금의 경남 함양), 부성군(富城郡: 지금의 충남 서산) 등지의 태수(太守)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신라(新羅) 왕실에 대한 실망(失望)과 좌절감(挫折感)을 느낀 나머지, 40세라는 장년의 나이로 관직(官職)을 버리고 소요자방(逍遙自放)하다가 마침내 은거(隱居)를 결심하였다.

그리고 찾은 곳은 경주의 남산(南山), 강주(剛州: 지금의 의성)의 빙산(氷山), 합천(陜川)의 청량사(淸涼寺), 지리산의 쌍계사(雙磎寺), 합포현(合浦縣: 지금의 昌原)의 별서(別墅), 동래의 해운대 등 여러 곳을 머물렀다고 하는데, 만년(晩年)에는 모형(母兄)인 현준(賢俊) 및 정현사(定玄師)와 도우(道友)를 맺고,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머물렀다.

해인사(海印寺)에서 언제 세상(世上)을 떠났는지 알 길이 없으나, 신라52대 효공왕(孝恭王) 12년인 908년 말까지는 생존(生存)하였던 것이 확실하다 하였다.

그러나 그 뒤의 행적을 전혀 알 수가 없으며, 산수간(山水間)에 방랑하다가 죽었다고 하며, 신선(神仙)이 되었다는 속설(俗說)도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최치원전(崔致遠傳)에 의하면, 고려왕건(高麗王建)에게 서한(書翰)을 보냈는데, 그 가운데, 계림(鷄林)은 시들어가는 누런 잎이고, 개경(開京)의 곡령(鵠嶺)은 푸른 솔(鷄林黃葉 鵠嶺靑松) 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어, 신라(新羅)가 망(亡)하고 고려(高麗)가 새로 일어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최치원 자신은 유학자(儒學者)라고 자처하면서도, 불교(佛敎)에 깊은 관심을 가져 승려(僧侶)들과 교유(交遊)하고 불교(佛敎)적인 글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그는 또한 유교(儒敎), 불교(佛敎) 이외에도, 도교(道敎)의 노장사상(老莊思想)과 풍수지리(風水地理)에 상당한 이해(理解)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도교(道敎)에 관한 글이, 특히 계원필경 제15권에 수록된 제사(齊詞)에서 그의 도교(道敎)에 대한 이해(理解)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도교(道敎)에 관한 글이, 특히 계원필경 제15권에 수록된 제사(齊詞)에서 그의 도교(道敎)에 대한 이해(理解)를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그가 친숙(親熟)한 대숭복사비문에 의하면 예언(預言)적인 도참신앙과 결부되어 국토재계획안적인 성격이 담겨 있어,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에도 상당한 이해(理解)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그의 사회에 대한 인식(認識)이나 역사적(歷史的) 위치(位置)가 선승(禪僧)이나,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의 대가(大家)였던 도선(道詵)과 비슷한 점이 주목(注目)할 만하다.



경고(警告)의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최고운결(崔孤雲訣)을 보면,

『唐帝儼 光啓元年 今上 晸十一載 乙巳嘉晦 崔致遠

敎文人 各刊 吾師問 於金經鐵表 裡망來賢 恕余之

暗藏 於光山北 獲者 必有德』



이 말은 당(唐)나라 황제(皇帝) 이엄(李嚴), 광계원년(光啓元年: 서기 885년)인 지금 우리 임금(憲康王) 11년 을사(乙巳)년의 아름다운 그믐날 밤에, 최치원(崔致遠)은 문인(文人)을 가르치며 책을 펴냈는데, 나의 스승이 그 금경철표(金經鐵表)에 대하여 물었다.

그 책 속에는 미래(未來)의 현인(賢人)을 멀리 내다보며 기다리는 내용(內容)의 책이니 용서하십시오(스승님).

나는 그 책을 광산(光山: 지금의 광주)의 북쪽에 숨겨 두었는데, 그 책을 손에 넣는 자는, 틀림없이 덕이 있는 사람입니다(必有德) 라고 하였다.



이 최고운결(崔孤雲訣)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을사(乙巳, 885, 憲康王11)년 여름 중국 장안(長安)에서 돌아와, 홍류동(紅流洞)에서 학성(鶴城) 선생을 만나서, 학성(鶴城) 선생이 묻고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답하는 형식(形式)으로 되어있다.

우리 나라의 미래(未來)에 나타날 일들을 아주 자세히 밝힌 예언서(豫言書)인데, 그가 책으로 간행(刊行)하여서, 지금의 광주(光州) 북쪽에 그 책을 숨겨 두었다고 한 것이다.

그가 이 책을 만든 때는 당(唐)나라 황제 이엄(李嚴), 희종(僖宗, 887~900) 연호가 광계(光啓) 그 원년(元年) 즉 우리 나라 신라 제49대 임금 헌강왕(憲康王: 신라 49대 왕 姓은 金, 諱는 晸, 景文王의 아들. 재위 중에 處容舞가 크게 유행하였음) 11년(875~886)에 책을 간행(刊行)하여 숨겨 두었는데, 그의 스승이 책에 대하여 묻자, 용서하라고 하며 보여주지 않고 그 책의 내용(內容)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미래(未來)의 어진 한 사람(賢)을 멀리 사모(思慕)하여 기다리는 내용(內容)이다.

그 책을 손에 넣는 자는 틀림없이 덕(德)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시(詩)를 남겨 놓았다.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최고운결(崔孤雲訣)을 보면,

『詩曰 刊得歸余墳 奉命惟我賢 時則光啓初 顯於道光元

傳於?木國 開藏是一人 白骨千載後 移藏慷慨岸』



책을 펴냈으니, 틀림없이 나의 책이 뜻하는 대로 따르십시오.

천명(天命)을 받아 들이십시오. 아 - 오직 한 분인 나의 현(賢)자여.

지금의 때는 광계원년(光啓元年)이지만

나의 책은 도(道)이며 빛의 근원인 원(光元)에 의해서 밝혀지는구나./

전해지기는 목국(木國)이지만

그 숨겨진 글을, 열어 밝히는 자는 일(一: 太乙)인 사람(인)이다.

내가 죽어 백골(白骨)이 된 후, 천년(千年)이 지나면

이 숨겨 놓았던 책은 감개무량하게도, 바닷가 언덕(岸)에 있는 사람에게 전(傳)하여지게 되어 있노라.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글과 시(詩) 속에는, 어느 한 사람을 사모(思慕)하며 기다리는 내용(內容)을 되어 있는 것이다.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자신이 지은 책의 내용(內容)을 깨달아 파악하고 그대로 따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 현자(현자)에게, 천명(天命)을 받아들이라고(奉命)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책을 숨겨 둔 시기가 광계(光啓) 초인 원년(元年)이지만, 그 책의 내용(內容)을 세상(世上)에 밝히는 사람은 도(道)이며, 빛의 근원(根源)이라고 하였다.

그가 바로 빛의 근원이 되는 분이라고, 그 숨겨진 것을 풀어 세상에 밝히는 사람은 오직 일(一)인 사람 즉 태을(太乙)이라고 못박아 말을 하는 것이다.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사후(死後) 천년(千年)이 지난 뒤에, 감격스럽게도 틀림없이 바닷가 언덕에 사는 사람에게 전하여 질 것이라고 한 것이다.

정말로 대단한 예언(預言)인 것이다.

최치원(崔致遠) 선생 자신이 책을 숨겨두었지만, 그것이 언제 누구에게 전(傳)해지고, 누가 그것을 깨달아서 세상에 밝혀내며, 그러한 일을 할 사람이 일(一)인 사람 즉 태을(太乙)이며, 어디에 있는 누구라고 정확(正確)하게 집어서 말하는 것이다.

조금도 빈틈없이 전(傳)하는 말이나, 혹시라도 마음이 흔들릴까 염려(念慮)하여, 그대로 천명(天命)을 받아들이고 따라야만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 때 뒤쪽에 있던 사람이 질문하였다.

“그 어진 사람이 도(道)이고, 광원(光元)이라고 하였는데, 좀더 자세히 설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자 명산 선생은 다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최고운결(崔孤雲訣) 속에

『必符受 日月之瑞 有受命 土之符 紫氣?華 像 月出

淸精 必生於寒門』



말세(末世)에 하늘이 내리는 부(符)인 천명(天命)을 받는 증표로, 일월(日月)의 서기(西氣)가 있는데, 그 천명(天命)을 받는 자가 바로 토(土)인데, 그 부명(符命)으로 그에게 자색 기운(自己)의 상서(祥瑞)로운 기운이 빛나고, 그의 모습을 보면 마치 떠오르는 달(月出)과 같고, 또한 맑고 깨끗한 정(精: 정도령)인 그는, 틀림없이 가난하고 영락(零落)한 가문(家門)에서 태어나게 된다고 하였다.



『天下之基 無王之際 建一統則 土行方 事類 劉邦』



그러나 그는 천하(天下)의 기틀을 잡는데, 어느 왕(王)과 교제(交際)함이 없이 천하(天下)를 통일하게 되는 토(土)인데, 그 토(土)의 행방(행방)은 마치 예전의 한(漢)나라의 기틀을 세운 유방(劉邦)의 선례(先例)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즉 미래에 태어나는 정도령은, 일월(日月)의 상서로움을 띠게 되고, 그것이 천명을 받는 부명(符命)으로 자색 기운(紫氣)이 빛나게 되고, 또한 그 모습이 달이 떠오르는 모습으로 맑고 깨끗한 정(精: 정도령)이라고 하였으며, 그 정(精: 정도령)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그는 틀림없이 가난하고 영락(零落)한 가문에서 태어나서 천하의 기틀을 잡고, 어느 왕의 도움도 없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한(漢)나라 유방(劉邦)의 선례(先例)와 비슷하다고 한 것이다. 그를 또한 토(土)라고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말하는 것이다." 라고 하자 한 사람이 다시 질문하였다.

"그 최치원 선생이 토(土)라고 하신 말씀을 좀 더 정확히 밝힐 수가 없을까요?" 라고 하자 명산 선생은 다시 설명을 시작하였다.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최고운결(崔孤雲訣) Ⓟ1을 보면,

『大唐 昇平久云云 自此天運 必符 中衰 有百年 陸沈之歎

丁未方色之姓出 後復見 天日 火分六百 木分七百 金分西百

以下大運 否塞 應至 兩白 受命之帝出 我東綿祚』



당(唐)나라가 태평한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필히 앞을 내다보니 점점 쇠하여져서 100년이 지나면 몹시 어지러워지며 나라가 적에게 멸망당하는 탄식이 있게 된다.

미방(未方) 즉 곤(坤)방 색(色)의 성(姓)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하늘의 태양(天日) 즉 천자를 보게 되는데, 화(火)를 나누면 6백이고, 목(木)을 나누면 7백이고, 금(金)을 나누면 4백인데, 이후 대운이 비색(否色)운이 될 때, 즉 꽉 막힐 때 이 때에 양백(兩白)이 천명을 받드는데, 이 때 천일(天日)인 하나님의 아들이 동방(東方)인 우리나라에 나타나서, 그 천자의 자리를 잇게 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미(未) 방위를 팔괘로 보면, 곤(坤)방인데 이 곤(坤)방의 색(色)에 해당하는 성(姓)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그가 바로 천자(天子) 즉 하늘의 태양(天日)이며, 그가 바로 양백성인(兩白聖人)이라고 하였다.

그가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천자의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고 밝히는 것이다.

미(未) 방위란, 팔괘로는 곤(坤) 방위고, 오행(五行)으로는 토(土)이고, 색(色)으로는 노란색(黃)이다.

이 노란색을 의미하는 성(姓)을 가진 사람이 우리 나라에 태어나는 양백성인(兩白聖人)이며, 하늘의 태양(天日)이라 하였는데, 이 노란색을 의미하는 사람의 성(姓)이 무엇인가?" 라고 묻자 사람들 사이사이에서 황(黃)씨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미 다들 알고들 있었던 것 같았다.



"바로 그 토(土)가 황(黃)씨를 의미하는 은어(隱語) 또는 매명(埋名)인 것이나, 밝히기 곤란하여 그냥 토(土)라고 최치원 선생이 전했던 것이다.

그 황(黃)이란 말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가지게 될 성(姓)인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즉 정미방색지성(丁未方色之姓)이란, 바로 인간(人間)의 성(姓)인 황(黃)씨를 말하는 것이다.



최치원 선생은 또한

『符 少 至靑川 末則 華』



즉 어린아이가 맑은 천(川)에 이르러, 마지막에는 빛이 나게 된다고 한 것이다.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천 년(千年) 전에 그 현인(賢人) 정도령이, 인천(仁川) 바닷가 언덕에 있는 것까지 밝혀 놓았던 것이다. 더욱 자세한 내용이 많이 있으나 뒤에 가서 설명하겠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1권 2장 5편 중에,

증지강락고인걸(曾知康樂固人傑) 급견계방진지선(及見季方眞地仙)

일소담토기천권(一宵談討幾千卷) 천리신교증십년(千里神交曾十年)

동위원객해산외(同爲遠客海山外) 우출동관풍우천(又出重關風雨天)

타일당빙쌍리비(他日倘憑雙鯉否) 해조응여월파련(海潮應與月波連)



일찍이 편안히 있는, 최초의 인걸(固人傑)을 알았는데,

더불어 말세(末世)를 당하여, 나타날 진인(眞人)이신 지상신선(地上神仙)이구나.

하룻밤 사이 기천권(幾千卷)의 책에 대하여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천리신(千里神)과 교제(交際)한 지가 이미 10년이 되었구나.

그는 바다와 산 저 멀리서 온 객(客)인데,

또한 하늘의 풍우(風雨)를 뚫고 다시 아이로 태어나시게 되는구나.

미래(未來)에 진실로 이 세상(世上)이 아주 혼란(混亂)에 처했을 때

(否: 즉 否運에), 두 마리의 잉어(雙鯉)에 의지하게 되는데,

지금은 바닷물(海)과 달(月)이 하나로 잇닿아 있구나!



일찍이 마음 즐거이 계시는 인걸(人傑)을 알게 되었는데, 또한 그 인걸(人傑)이 바야흐로 말세(季方)에 나타날 진인(眞人)이신 지선(地仙), 즉 땅의 신선(神仙)이라고 하였으며, 그 지상신선(地上神仙)인 천리신(千里神)과 수천권(數千卷)의 책을 하룻밤에 토론(討論)을 벌였다고 하였다.

또한 미래(未來)에 언젠가 진실로 천하(天下)가 비색(否)운일 때, 그 두 마리의 잉어(雙鯉)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그렇다면 미래(未來)에 천하(天下)가 비색(否塞)운을 맞이한다고 하였는데, 그 때가 어느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라고 하자 명산 선생은 다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선현참서(先賢讖書) 겸암서애문답(謙菴西崖問答) 중에,

『先生曰......四百年之後 天運 否塞也』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과 그의 형인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선생간의 문답(問答)인데, 서애(西厓) 선생이 물었을 때, 그의 형인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선생이 대답하기를, 지금부터 400년 후에는 천운(天運)이 비색(否塞)운이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류운룡(柳雲龍) 선생과 류성룡(柳成龍)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분이시니, 대답이 충분한가?“ 라고 명산 선생이 묻자 질문하였던 사람은 잘 알겠다며, 고개를 수그렸다. 다시 명산 선생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해월(海月) 선생은, 인걸(人傑)이 말세(末世)에 나타날 진인(眞人)이며, 지선(지선)이며 비운(비운)에 우리가 의지하여야 할 두 마리의 잉어라고 하였다.

또한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천하(天下)가 비색(否塞)운을 맞을 때, 양백성인(兩白聖人)이 천명(天命)을 받게 되며, 이 양백성인(兩白聖人)이 우리 나라에서 태어나게 되며, 우리 나라가 그 천자(天子)의 위(位)를 이어 나간다고 한 것이다.

그 양백성인(兩白聖人)을 천일(天日), 즉 하늘의 태양(태양)이라고 한 것이다.

그를 현(賢), 즉 현인(賢人), 현자(賢者)라고 하였으며, 가난하고 쇠락(衰落)한 가문(家門)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그를 도(道)이며, 빛의 근원(根源)이라고 하였다.

최치원(崔致遠) 선생도 그의 최고운결(崔孤雲訣)의 다른 구절에, 그 천자(天子)인 정도령을 적일(赤日)이라고 쓰고 있고, 격암(格菴) 선생도 그를 마상록(馬上錄)에서 또한 적일(赤日)이라고 하였으며, 해월(海月) 선생 역시도 그의 시(詩) 속에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이 예언서(豫言書)에서 말하는 적일(赤日) 즉 붉은 태양(赤日)이라는 말은, 단순한 의미의 하늘의 붉은 태양(태양)을 의미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예언서(豫言書)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 아들의 별칭(別稱)으로 일월(日月) 즉 해와 달로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그냥 하늘의 태양(太陽) 또는 태양(太陽)이라면, 뜻이 정확하지 않으니까 적일(赤日)이라고 하여 그가 있는 곳까지 숨겨서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 적(赤)자는 바로 경기 고을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태양(太陽)인 하나님의 아들이, 경기 고을에 있다는 의미의 은어(隱語)로써 적일(赤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적일(赤日) 즉 하나님의 아들을 손에 넣은 자(執赤日)가 해월(海月) 선생이고, 그 하나님의 아들이 해월(海月) 선생의 후손(後孫)으로 태어날 것을, 격암(格菴) 선생은 그의 마상록(馬上錄)에서 자세히 밝혀 놓은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인 정도령은 어린 아이라는 뜻으로, 즉 한문(漢文)으로 소(小), 소(少) 등으로 표시한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과 격암(格菴) 선생 두 분이 모두 다른 그들의 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소(小, 少)로 표현하였으니 유념해 두기 바란다.

최치원(崔致遠) 선생도 또한 그의 글에서 그 소(少), 즉 어린이가 맑은 천(川: 인천)에 이르러 끝에 가서는(末則) 빛을 발한다(華)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의 글에서 붕(鵬)새가 만리(萬里) 밖에서 날아와서 춘가(春家) 앞으로 편지를 전해 준다고 하였는데, 그 춘가(春家)가 무슨 의미인지를 자세히 설명하여 주시지요.” 라고 하자

“이 춘(春)이라는 말은 잘 이해하여야 하는데, 이 춘(春)자란 명사(名詞)로는 우선 봄을 뜻하며, 방위로는 동(東)쪽이며, 오행(五行)으로는 목(木)이며, 젊은이를 의미하며, 또한 술(酒)을 의미하는 말이다.

동사(動詞)로는 다시 살아난다(更生)는 뜻과 화한다(和)는 뜻이 있는 것이다.

또한 팔괘(八卦)로는 진괘(震卦)로 장자(長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임금의 아들인 세자(勢者)가 머무는 궁(宮)을 동궁(東宮) 또는 춘궁(春宮)이라고 하는 것이다.

특히 유념해 두어야 할 의미가 이 춘(春)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뜻하는 은어(隱語)인 것이고, 그 뜻 가운데, 이 춘(春)자가 술(酒)을 의미하는데, 모든 예언서(豫言書)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비유하는 말로 술(酒)이란 의미로 많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즉 양백(兩白)이란 말의 이 백(白)도 술이란 말인 것이다.

즉 양백삼풍(兩白三豊)은 격암유록(格菴遺錄)에서 자하주(紫霞酒)라고 표현하였고, 이를 신선(神仙)의 식량(食糧)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춘가(春家)라고 하면, 그대로 술이 있는 집, 술을 파는 집이 되는 것이니 그대로 주점(酒店)이 되는 것이다.

술이 있는 집, 술을 파는 집, 즉 술집이란 술이 있는 곳이 되는 것이니, 그 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춘(春)이다. 즉 술집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곳을 의미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 의미는 북두칠성(北斗七星) 모습이 손잡이가 달린 술그릇 모양이기 때문에 붙여져 온 것이다.



대순전경(大巡典經) 제6장 법언(法言) 153절을 보면,

『어떤 大臣이 大命을 받어 그 첫 공사에 長安에 있는 靑樓의 物情을 물었나니 이것이 옳은 공사니라』



여기의 청루(靑樓)란 술집이란 뜻이니, 즉 술을 파는 사람이 있는 곳이란 말이다. 증산(甑山) 상제께서 말씀하시길, 어떤 대신(大臣)이 대명(大命)을 받아, 그 첫 공사(公事)에 서울 장안(長安)에 있는 술집(靑樓)의 물정(物情)을 물었는데, 이것이 옳은 공사(公事)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 말의 참 의미는 진짜 마시는 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깊은 뜻이 있는 말이다. 이 춘(春) 즉 술이 의통(醫通)이요 해인(海印)이란 말이다.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말인 것이다.

또한 정도령이란 말의 정(鄭)자 속에는 추(酋)자가 들어 있는데, 이 말은 우두머리, 두목이라는 뜻과 술(酒)이라는 뜻이 있는 것이다.

즉 우두머리인 대두목(大頭目)을, 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붕(鵬)새란 무엇인가? 이미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에서 밝혔듯이 붕전진기(鵬傳眞機), 즉 붕새가 진짜 하늘의 기미를 전해 준다는 것이다.

모든 하늘의 기미(機微)는 하나님의 조화(造化)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 붕새가 그 진기(眞機)를 전해 주었다 하면 그 붕새는 하나님을 뜻하거나, 하나님이 보낸 사자(使者)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붕(鵬)새에 대하여는 《장자(長子)의 제2편 소요유(逍遙遊)》편을 보면,

「북극 바다에 고기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하는데, 곤(鯤)의 크기는 몇 천리(千里) 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몇 천리(千里)나 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하는데, 붕(鵬)의 등의 길이가 몇 천리(千里)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붕(鵬)이 떨치고 날아 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았다.

이 새는 태풍이 바다 위에 불면 비로소 남극(南極) 바다로 옮겨 갈 수 있게 된다. 남극 바다란 바로 천지(天地)인 것이다.

제해(齊諧)라는 책은 괴상한 일을 기록(記錄)한 책이다.

제해(齊諧)의 기록(記錄)에, 붕(鵬)이 남극 바다로 옮겨 갈 적에는 물을 쳐서 삼천리(三千里)나튀게 하고, 빙빙 돌면 회오리 바람을 타고 구만리(九萬里)라 지나 올라가며, 6개월을 날아와서 쉬게 된다고 하였다.」

이상은 장자(長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일종의 상상(想像) 속의 큰 새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인데, 격암(格菴) 선생과 해월(海月) 선생 두 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아들한테 편지를 전해주는 새(鳥)로 표현한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이 붕(鵬)새가 날아와서는 고개를 들어 춘(春) 앞으로 편지를 전하여 주어서, 춘(春)인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사정을 알게 된다고 하였으니, 격암(格菴) 선생은 이 말을 받아서 무엇이라고 했는지 다음 구절을 보도록 하자.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 Ⓟ400을 보면,

『何處見人 千里人 來滄海月 一春家在 漢陽 華

有德之家 逢眞人是也』



어디를 가야 그 천리인(千里人)을 만나 볼 수 있을까?

그 천리인(千里人)은 미래(未來)에 창주(滄洲),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 일(一)인 춘(春), 즉 하나님의 아들이 한양(漢陽)에서 꽃을 피운다고 하였다. 즉 태어난다고 한 것이다.

또한 덕(德)을 쌓은 가문(家門)에서 이 진인(眞人)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였다.



즉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찾는 천리인(千里人) 즉 천리(千里)를 한 글자로 합하면 중(重)자가 되는데, 이는 임금이라는 뜻과 아이라는 뜻과 곡식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또한 격암(格菴) 선생의 고향인 울진(蔚珍)에서 보면, 천리(千里) 밖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인 이 아이가, 미래에 창주공(滄洲公: 海月 선생의 아버지)과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 아이가 일(一)이며 태을(太乙)이신 춘(春)으로, 한양(漢陽) 즉 서울에 있는 집에서 태어난다고 한 것이다.

그동안 덕(德)을 쌓은 가문(家門)에서 이 진인(眞人)을 맞이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담긴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가 서울에서 태어난 일(一)인 춘(春)의 앞으로 전해질 것이라고 자세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자 모든 사람들은 격암(格菴) 선생과 해월(海月) 선생 두 분이 짜고 하는 말 같다며, 기가 막히게 앞뒤가 들어 맞는다고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명산 선생은 덧붙여서 이야기하였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1장 5편에,

표격구승시(摽格舊勝詩) 시편금승인(詩篇今勝人)

휴차이소거(休嗟二疏去) 성주유온륜(聖主有溫綸)



이미 널리 알려진 격암유록(格)은, 옛날 먼저(舊) 이긴 자(勝)에 대한 말씀이고,

새로운 시편(詩篇)은, 지금(今)의 이긴 자(勝人)에 대한 말이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탄식하던 차에, 다음 두 번째는 아이가 뚫어서 완전히 거두어 들이는구나.

성인(聖人)인 구세주(主)는 온유하게, 하나로 통일하여 다스리는구나.



이미 세상에 알려진 격암유록(格菴遺錄)을 구승시(舊勝詩)라고 하였다, 즉 이미 지나간 사례(事例)들을 기록(記錄)한 이긴 자에 대한 말씀인 것이다.

즉 악조건(惡條件)에 대한 내용(內容)이 많은 것이다.

즉 먼저 오셔서 도(道)를 전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그러기에 전쟁(戰爭)이나 불로써 대부분의 사람들을 멸망(滅亡)시키는 내용(內容)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詩)인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는, 지금의 이긴 자에 대한 말씀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멸망(滅亡)당해 비참(悲慘)해지는 내용은 별로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먼저 오셔서 하던 일을 멈추고 탄식하던 차에, 두 번째는 아이가 꽉 막힌 것을 뚫어서 소통(疏通)시켜서 장애(障碍)를 없애서 일을 완성(完成)시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인(聖人)인 구세주(救世主)가 온유(溫柔)하게 세상(世上)을 하나로 통일(統一)하여 다스리게 된다고 한 것이다. 이 소(疏)자가 아이가 나올려고 태가 뚫리고 발이 움직인다는 뜻인 것이다. 즉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과 이 아이가 모든 것을 뚫어서 해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는 호조건(好條件)에 대한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約束)인 셈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 시(詩)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드는가?“ 라고 하니, 기독교인(基督敎人)인 듯한 사람이 말하였다.

“그러니까 격암(格菴) 선생의 격암유록(格菴遺錄)은 구약(舊約)이고,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는 신약(新約)이 되는군요” 라고 하자 사람들은 어쩐지 두 분의 말씀이 서로 앞뒤가 착착 맞는 것이 수상하더니만, 격암유록(格菴遺錄)은 하나님의 구약(舊約)이고,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는 신약(新約)이라며 말들을 주고 받았다.

잠시 후 다시 명산 선생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1장 5편 2수에,

욕출북문로(欲出北門路) 감위동해인(甘爲東海人)

부재동백랍(不才同白蠟) 안가매청륜(安可浼靑綸)



장차 북쪽에서 태어나, 세상에 드러나기는 하지만

감(堪)은 동해인(東海人)인 것이다.

그(才: 천지장수)는 백랍(白蠟: 꿀찌꺼기)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니,

어찌 가히 책임있는 나라의 관리가(靑綸) 허튼 말로 명예를 더럽히겠는가?



이 시(詩)를 보면 장차 미래(未來)에 북쪽에서 태어나기는 하지만, 감(堪)을 동해인(東海人)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또한 꿀찌꺼기인 백랍(白蠟)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으며, 어찌 푸른 실로 된 인끈을 한 나라의 책임 있는 관리가, 명예를 손상시키는 허튼소리를 하겠는가 하여 진실만을 밝히는 말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이 명예를 내걸고 하는 말이라고 전하는 것이다.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삼각산(三角山)이 북쪽(壬)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쪽(戌)으로 피신하여 어렵게 살다가, 용산이 서울 도성의 남쪽(午)에서 일어났으므로 후에는 남쪽으로 옮겨가서 세상(世上)을 아름답게 바꾼다고 이미 밝힌 바가 있는 것이다.“ 라고 하자 그 때 한 사람이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해월(海月) 선생은 굳이 동해인(東海人)이라고 하는가요?” 라고 하자

“그것은 정도령 자신은 서울 용산(龍山)쪽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선친(先親)의 고향(故鄕)이 동해(東海) 바다가 있는 울진(蔚珍)이기 때문인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 이후의 선조(先祖)들이, 한 번도 울진(蔚珍)을 벗어나서 살아 본 적이 없는 울진(蔚珍) 사람이기 때문에, 비록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하여도 동해인(東海人)으로 간주한다고 강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아들을 또한 감(甘)이라고 하였는데, 구분지어 설명하여 주시지요.” 라고 하자



“감(甘)이라는 말도 또한 정도령에 대한 또 하나의 별칭(別稱)인 것이다.

대순전경(大巡典經) 제7장 교리(敎理)와 규범(規範) 23절과 증산(甑山) 상제의 유서집(遺書集) 제2장 미륵탄생공사서(彌勒誕生공사書)를 보면, 감결(甘結)이란 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金首婦 十七歲에 처음 首婦가 된 후에 首婦房에서, 상제께서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이 한 공사에 너의 眞經을 쓰리니, 이 공사는 天地生人하야 用人하는 일이니라’ 하시고 공사문에 金夫人의 經血로써 <甘結>이라 쓰시고, 仙佛儒의 각 글자 위에 血點을 찍어 공사보신 다음 夫人에게 주시며 ‘잘 간직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基礎棟梁 天地人神 有巢文 文理接續 血脈貫通.

治天下之大經大法 皆載此書. 文理時異 治以道同.

文則天文 文有色 色有氣 氣有靈 氣靈不昧以 具求誼而應萬事

事之當旺 在於天地 不必在人而 天地生人用人

天地之用 胞胎養生 浴帶冠旺 衰病死葬

元亨利貞 奉天地道術 敬授人時

佛之形體 仙之造化 儒之凡節

甘 結



天文 陰陽 政事

受天地之虛無 仙之飽胎

受天地之寂滅 佛之養生

受天地之以詔 儒之浴帶

冠旺 ?率 虛無 寂滅 以詔》



증산(甑山) 상제께서 이 공사(公事)는 천지(天地)가 사람을 태어나게 하며, 그 사람을 쓰는 일이라 하면서, 공사문(公事文)에 김부인(金夫人)의 경혈(經血)로써 감결(甘結)이라 쓰시고, 유불선(儒佛仙)의 각 글자 위에 혈점(血點)을 찍어 공사(公事)를 보신 다음 김부인(金夫人)에게 주면서 잘 간직하라고 하였다.

즉 하늘이 미륵불(彌勒佛)을 보내어 그에게 대임(大任)을 맡겨서, 유불선(儒佛仙)을 하나로 통일(統一)하게 하고, 천하(天下)를 통일(統一)하여 세상(世上)을 다스리게 한다는 의미인데, 그 공사문(公事文)에 큰 글씨로 감결(甘結)이라고 쓰신 것이다.

즉 경혈(經血)로써 감결(甘結)을 큰 글씨로 쓴 것은 잘 눈여겨보라고 한 것이다.

감결(甘結)이란 의미는 감(甘)이 끝을 맺는다(甘結)는 것이다.

결(結)자의 의미를 잘 보도록 하자. 결(結)자의 의미는 잇다, 연결하다, 끝내다, 완성하다, 바로잡다, 열매를 맺다 등의 뜻이 있다.

그러니까 감결(甘結)이란 감(甘)이 지위를 잇게 된다. 또는 감(甘)이 완성한다, 끝낸다, 감(甘)이 바로 잡는다, 감(甘)이 열매를 맺는다, 이와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다.

증산(甑山) 상제께서 미륵탄생공사서(彌勒誕生公事書)에서 다른 내용(內容)보다 큰 글씨로 감결(甘結)이라 쓴 이유(理由)는, 감(甘)이 미륵(彌勒)으로 탄생(誕生)해서 자신의 뒤를 잇게 되고, 이 세상(世上)을 바로 잡아서 완성하여 끝맺음을 하는 열매이기 때문인 것이다.



김찬문(金贊文) 씨와 김태진(金泰振) 씨가 증산(甑山) 상제의 언행(言行)을 수록하여 펴낸 성화진경(聖化眞經)을 보면,



『이 뒤에는 도통(道通)이 한 번에 열리리라. 그러므로 판밖에서 도통군자(道通君子)를 하나 두노라. 장차 그 종자(種子)가 커서 천하(天下)를 덮으리라. 공자(孔子)는 다만 72인만 통예를 시켰기로 얻지 못한 자는 모두 원한을 품었느니라.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나 닦은 바에 따라 도통(道通)을 주리니, 이 뒤에는 도통군자(道通君子)가 나타나서 도통(道通)씨를 뿌리는 날에는 상재(上才)는 7일이요, 중재(中才)는 14일이요, 하재(下才)는 21일만이면 각각 도통(道通)하게 되리라.』



성화진경(聖化眞經) Ⓟ27에,

『하로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과거에는 도통(道通)이 나지 않았으므로 해를 가하면 해를 입었지만, 이 뒤로는 도통(道通)한 사람이 나오면 해를 끼쳤다가는 제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이 뒤에 도통군자(道通君子)가 나오면 조심하라』



이와같은 말들을 보면 감(甘)이 누구를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감(甘)이란 결국 미륵불(彌勒佛)이며, 도통군자(道通君子)란 대두목(大頭目)을 말하는 것으로 결국 정도령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증산(甑山) 상제는 판밖에 도통군자(道通君子) 한 사람을 두었는데 그 사람이 나와야 도통(道通)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며, 그 도통군자(道通君子)를 해(害)치려 하는 자는 도리어 해(害)를 받으니 조심하라고 하였다.



이번엔 격암유록(格菴遺錄) 가사총론(歌辭總論) Ⓟ86을 보자,

『人衆則時 物盛이요 物勝則時 地闢이요 地闢則時 苦盡甘來

地運退去 天運來로 天下靈氣 皆入勝』



사람(人衆)이 많아지면 이 때는 물건(物)이 성(盛)하며, 물건(物)이 성하면 이 때는 개벽(開闢)을 하게 되는데, 개벽(開闢)을 하면 이 때가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는데, 고진감래(고진감래)란 땅의 운(地運)이 물러나고, 천운(天運)이 와서 천하(天下)의 신령(神靈)한 기운(氣)이 모두 다 십승(勝)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정감록집성(鄭鑑錄集成)의 운기구책(運奇龜策)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內容)을 말하고 있다.

『安心樂土 則東方之地 孰有勝哉. 人衆則物盛 物盛則地闢

地闢則 亦甘豈不爲後來富貴之地乎 末乃天運已?地基漸衰

而靈祖之氣盡入於 十勝云』



감(甘)이 뒤에 와서, 어찌 부귀(富貴)한 땅으로 화(化)하게 하지 않겠는가? 말세(末)에는 천운(天運)이 이르기까지 땅의 기운이 점점 쇠약(衰)해지지만, 곧 신령(神靈)한 근본이 되는 기(氣)가 십승지(十勝地)에 이르게 된다.



라고 하여 감(甘)이란 십승(十勝)인 정도령을 뜻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을 단순히 고생(苦生)하다 끝에 가서는 낙(樂)이 온다는 말로만 알아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고진감래(苦盡甘來)란, 이 고통(苦痛)의 세상(世上)을 즐겁고 아름다운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바꾸는 감(甘) 즉 정도령이 온다는 말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世上)을 개벽(開闢)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화(化)하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그 감(甘)이 와서 이 세상(世上)을 끝맺음하고 좋은 세상으로 화하게 한다 하였으니, 그 감(甘)이란 바로 정도령인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이서구(李書九) 선생의 채지가(採芝歌) 칠월식과(칠월식과) Ⓟ642~643에,

『利在田田 찾아가니 一間高亭 높이짓고 四正四維 기둥세워

五十土로 대공받쳐 井田에 터를 닦아 十十交通 길을내고

主人첨지 누구신고 十五眞主 이아닌가 여보첨지 불러와서

참외한個 맛을보세 이말듣고 일어앉아 南에南天 바라보니

夕陽은 在山하고 梧桐은 落金井이라 和色은 土器金井이오

瓜體는 水氣月精이라 甲寅終於 辰月이오 己申長於 未月이라

굵고단걸 따서보니 時價金이 十五로다 人口有土 앉아서

三人一夕 닦아내서 右로깎고 左로깎고 맛을보고 다먹은後

여보여보 첨지 쓰구나 달구나 첨지허허 하는말이

이내말씀 들어보소 如保如保 하였으니 赤子之 如保로다

첨지첨지 하였으니 萬事知 僉知로다 쓰구나 하였으니

설立밑에 열十字요 달구나 하였으니 西中有一 아니련가』



이 말은 이재전전(利在田田)을 찾아가니 정전(井田) 터를 닦고, 오십토(五十土)로 대공받쳐 한 칸(一間)의 정자(亭)를 높이 짓는데, 십십(十十)으로 서로 통(通)하는 길을 내고, 그 정자(亭)의 주인이 십오진주(十五眞主)인 첨지인데, 주인 첨지 불러와서 참외 한 개 맛을 보였는데, 그 시가금이 십오(十五)이고 그 참외를 좌(左)로 깎고, 우(右)로 깎고 하여 맛을 다 본 후에, 그 십오진주(十五眞主)인 주인 첨지를 보고 여보여보(如保如保) 하였으니, 그 적자지(赤子之) 여보(如保)로다 한 것이다.

즉 적자(赤子)란 어린아기를 의미하는데, 여보(如保) 즉 잘 보살펴야만 하는 아기라고 하는 것이다.

첨지첨지 하였으니, 만사지(萬事知) 첨지(僉知)라고 한 것이다.

그가 만사(萬事)를 아는 지인(知人)이라고 하였으며, 쓰구나 하였으니 설 립(立) 밑에 열 십(十)라고 한 것이다.

즉 입십(立十) 즉 십(十)을 세우라는 말인데, 십(十)인 정도령을 제 위치에 세우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열 십(十)자와 세울 립(立)을 하나로 하니 쓸 신(辛)자가 되는데, 매우 어렵다 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또한 달구나 하는 말은 달 감(甘)자인 것이다.

이 달다는 말을 이서구(李書九) 선생은 달구, 즉 닭이라고 하였다. 즉 닭 유(酉)를 말한 것이며, 이 닭 유(酉)자는 서중유일(西中有一) 아니런가 하였다.

즉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이 유(酉)자는 서(西)쪽에 일(一)인 정도령이 있다는 말인데, 그를 달다(甘)는 뜻으로, 즉 감(甘)이 서(西)쪽에서 머물고 있는 일(一)인 즉 태을(太乙)이며, 그가 십오진주(十五眞主)인 적자(赤子) 즉 귀하게 보살펴야 할 아기장수라는 말이다.

또한 그가 지인(知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그가 십오진주(十五眞主)이고, 그가 이재석정(利在石井) 이재전전(利在田田)하는 그 석정(石井)에서 높이 정자를 짓는 사람이라고 풀어 밝힌 것이다.

그러나 그 십승(十勝) 정도령을 바로 세우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십(十)을 세우다(立)라는 말을, 쓰구나 즉 쓸 신(辛)자 라고 하여 힘이 드는 일이라고 풀어 설명한 말이다.

다시 말하면 매우 어렵다는 뜻으로 쓰구나 하였다.

쓰다는 뜻의 신(辛)자는, 세운다는 뜻의 립(立)에 정도령을 뜻하는 십(十)을 그 밑에 붙여서, 쓸 신(辛)자가 되는 것이다.

참외가 완전히 익기 전에는 그 맛이 쓰다. 그러나 다 익고 나면 맛이 단 것이다. 그러니까 그 참외가 다 익어서 맛이 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간(期間)을 표시(表示)한 말인 것이다.

아주 기가 막힌 말로 풀어쓴 말인 것이다. 이서구(李書九) 선생의 이 말을 하늘이 가르쳐 주면서 전(傳)하라고 하여, 전(傳)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라고 하자 다시 한 사람이 질문을 하였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자신이 지은 책을 숨겨 두었는데, 덕(德)이 있는 현인(賢人) 한 사람(一: 太乙)이 그 책을 손에 넣게 되고, 그 의미를 알게 된다고 하였으며, 또한 그의 책이 바닷가 인천(仁川)에 사는 한 사람(一: 太乙)에게 전(傳)하여 질 것이라고 일천년(一千年) 전에 그의 글에 써 놓았습니다.

해월(海月) 선생은 최치원(崔致遠) 선생보다 더 가까운 지금부터 4백년 전의 분인데, 해월(海月) 선생 자신의 글을 손에 넣어서,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명산 선생은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을 펼쳐 들었다.

http://blog.daum.net/seelight2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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