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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48
혁명도 유럽제를 선호하는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
김갑수 | 2018-01-22 15:30:5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소크라테스는 코믹, 플라톤은 종교적 망상가”
비판정신 일깨우는 이론물리학자의 과학사

내가 이 책,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 TO EXPLAIN THE WORLD》(스티븐 와인버그 저, 2016년 한국어 초판)을 소개하는 이유는 엉뚱한 데에 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주로 서양의 과학에 한정되어 있다. 비서양의 과학으로는 3부에 아랍의 과학이 고작 1개 장으로 논의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과학사 저작물이다. 과학의 역사, 즉 ‘역사물’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역사는 늘 객관적으로 존재해 왔지만 이것을 기록한 어떠한 역사물도 객관적일 수는 없었다. 제 아무리 객관적인 기술을 했다고 하더라도 역사물은 그 이전에 논의의 대상을 제한적으로 선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거의 무한하다고 할 정도로 많은 역사적 사실들 중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일부만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취사선택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평가 행위가 아닌가? 평가는 가치를 판단하는 주관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물은 주관적이라고 해야 한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의 서구 과학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책의 주요 내용 때문에 권하는 것은 아니다. 와인버그의 가장 탁월한 책으로는 《최초의 3분》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소개한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 숀 캐럴의 《현대물리학》 등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

나는 이 ‘100권 시리즈’에서 와인버그의 또 따른 책 《최종이론의 꿈》을 소개한 바 있다. 이 책은 종교와 철학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매우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고 있는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삭제해 버렸다.

우리가 이 책에서 심각하게 배워야 할 것은 치열하고도 과학적인 비판정신이다. 책을 읽을 때 비판정신처럼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책을 믿을 바에야 책을 버리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놀랍게도 2,400년 전 맹자가 한 말이다.

이 책의 1부와 2부에서는 그리스의 물리학과 천문학을 논의한다. 여기에는 탈레스를 필두로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까지의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람들 그리고 다시 소크라테스부터 플라톤, 데모크리토스, 파르메니데스, 제논, 아르키메데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논의된다.

이들은 그리스에서 시공간으로 아주 먼 이방에 있는 우리 한국인도 한두 번쯤은 들어본 이름들이다. 다시 말해 세계적인 고대 과학자요, 철학자들이다. 그러나 이 쟁쟁한 사람들 중에서 저자의 붓끝에서 살아남는(?) 이는 하나도 없다. 우리가 ‘거인’이라고 알고 있는 인물일수록 비판의 날이 더 예리하다.

나는 위에 열거된 사람 중에서 오늘의 ‘세상’에 부합되는 주장을 한 사람은 그나마 헤라클레이토스와 데모크리토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셋 정도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자 역시 이 점은 인정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은 불’이라고 했다. 여기서 ‘불’은 비유이다. 만물은 불처럼 끊임없이 생성 소멸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오늘의 ‘세상’에도 부합된다. 그는 모든 물질이 원자(atom, 그리스어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이라는 말에서 나왔다.)로 이루어졌다는 관점을 피력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다양하고 방대한 연구 분야 중 오늘날 세상에 요긴한 것도 더러 있다.

저자가 가장 혹독하게 질책(?)하는 사람은 플라톤의 스승 격인 파르메니데스와 소크라테스 그리고 플라톤이다. 저자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은 ‘틀린 것’이라고 일거에 단정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구름’처럼 허황되어서 코믹한 수준이라고 조롱한다. 저자는 서양철학의 대부처럼 인식되고 있는 플라톤(‘서양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은 ‘종교로 가득 차 있는 정치적인 망상가’ 정도로 치부한다.

플라톤은 자기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국가’에 대해 말하면서, “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인간의 일에 신이 개입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자는 누구든지 5년 동안 독방에 감금되고 그동안 회개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물질의 근원으로 두 개의 삼각형을 선택한 플라톤은 말하기를, “만약 누군가가 삼각형보다 더 나은 선택을 제안할 수 있다면 나는 그의 비판을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머지 설명을 모두 생략하기로 한다… 이것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너무 긴 이야기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의 성취를 환영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만일 지금 내가 물리학 논문에서 물질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면서, 나의 논증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기 때문에 생략한다고 하면서 그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제안한다면 읽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라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는 긍/부정 3 대 7 정도의 지면 할애로 비판을 가한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범한 오류를 찾아서 지적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나아가 저자는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추앙받고 있는 뉴턴에 대해서도 ‘제1 허점’ ~ ‘제4 허점’을 나열하면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유럽에서 선구적인 ‘근대’ 석학으로 존경받고 있는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학문에 대해서도 거의 부정하는 수준으로 비판한다. 저자는 현대과학은 과학자들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베이컨이나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들이 생각해 낸 ‘과학 하는 방법’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이 과학사 기술이 이렇게 된 데에는 기술 방법상의 이유가 있다. 저자는 첫머리에서 자기는 ‘역사학자들이 가장 위험하게 여기고 피하는 방법’을 사용하겠다고 예고했다. 그것은 바로 과거를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방법이다. 저자가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과거의 과학과 현대의 과학 개념이 얼마나 다른지를 분명하게 비교함으로써 이것이 얼마나 어렵게 완성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인 것으로 읽힌다.

내가 한국의 박정희‧노무현‧문재인 빠와 마르크스 추종자를 안타깝게 보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비판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상의 오류와 결함과 단점을 말하는 법이 없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켜 요즘은 새로 나온 말 ‘팬덤(fandom)’을 쓰는 것 같은데 약간 고전적인 영어로 하면 피타고라스의 추종자들과 같은 ‘컬트(cult)’가 된다.

역사적 인물의 능력이나 업적 또는 도덕성을 평가할 때에는 당대 시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학문적 사실의 오류나 팩트의 문제는 현재의 기준에서 논의하는 것이 맞고도 유용하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특산(特産)인 정치적 빠들과 마르크스 추종자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혁명도 유럽제를 선호하는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

오늘날 한국인의 많은 관심은 미국과 유럽을 향해 있다. 반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제3세계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심하다. 세계화, 국제화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비세계적이고 비국제적이다.

현실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지배가 끝없이 도전을 받는 중에 많은 지역에서 그들의 지배체제가 붕괴되고 있지만 유독 역사와 문화만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서구 중심적 논리로 재해석되고 있다. 지배자들이 쓴 세계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가진 거라고는 서구 학식밖에 없는 지식인들이 이 논리를 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영국의 ‘명예혁명’이라고?

예컨대 한국의 지식인들은 혁명에서도 모양주의에 빠져 있다. 2017년 촛불이 한창일 때 조국 교수는 “명예혁명을 만들어내자”고 말했다. 명예혁명이라니? 명예혁명이라고 하면 ‘영국 시민혁명’을 의식한 용어일 것이다. 일단 모순적인 말이다.

17세기 중후반 영국에 ‘시민’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있었다고 해도 당시 혁명을 일으킨 주체는 시민이 전혀 아니었다. 그 전에 사실 ‘혁명’이라는 용어에도 어폐가 있다. 혁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영국인 콘래드 러셀(버트란트 러셀의 아들)도 이것은 “17세기에 유럽 혹은 유럽-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났던 내전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주재홍이 쓴 《우리 안의 만들어진 동양》은 그의 박사 논문인데 ‘세계사 교과서 속의 오리엔탈리즘’을 집중 분석하는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지금은 영국에서도 17세기의 그 사건을 가리켜 ‘명예혁명’이니 ‘시민혁명’이라는 식의 역사 왜곡을 하지 않는다.

1649년의 영국 사태는 결코 혁명이 될 수 없었다. 당시 정치적, 사회적 개혁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재정 문제가 개입되어 있으며 단지 쿠데타 주도세력이 의회와 군대의 급진세력에게 선제공격을 가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1970년대까지는 ‘영국혁명’이라는 말을 썼지만 1970년대 이후 영국 사학계를 뒤흔들어 놓은 대논쟁 끝에 영국혁명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현행 영국 교과서에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있는 경우는 1권도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교과서는 영국혁명이라고 되어 있으니 이것은 딱하고 한심한 일이다.

이제 영국인들은 17세기의 그 사건을 가리켜 ‘혁명’이라고 하지 않고 ‘영국내전’이라고 부른다. 영국인들도 내전이라고 호칭하는 그 사건을 여전히 한국의 지식인들은 혁명이라고 해 주고 그 앞에 ‘명예’까지 붙여주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서양을 사모하는 모양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2. 프랑스혁명은 더 멋지다고?

프랑스 혁명에서 채택된 ‘인권선언’의 제1조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로 되어 있다. 물론 프랑스혁명에는 영국내전보다 긍정적인 면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혁명의 한계와 결함은 인권선언 제1조에부터 도사리고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되어 있는데 이 ‘모든 인간’에 여성, 농민, 노동자 등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혁명은 다수의 사회적 약자가 배제된 부르주아 ‘그들만의 잔치’였다.

또한 당시 프랑스 사회는 노예제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식민지 노예를 잃을까 두려워했다. 프랑스 삼색기의 자유, 평등, 박애는 백인 남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지식인들은 프랑스 혁명이 위대하다고 입에 침을 바른다. 그런 지식인일수록 정작 ‘동학’과 ‘광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동학은 프랑스 혁명보다 혁명적이었고 광주는 파리코뮌보다 단연 더 우월한 봉기였다.

한국 지식인들은 유럽의 것을 비판할 줄 모른 채 위선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한다.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자기가 유학한 서양의 민주주의를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면서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외면한다. 그들은 서양식의 ‘근대 데모크라시’ 속에 감춰진 억압과 배제의 기작(機作, 메커니즘)을 지적할 능력이 없다. 모양주의에 침윤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유럽 = 민주’라는 기준으로 역사와 문화를 재단한다. 이로 인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근대국민국가를 형성한 서양식 데모크라시에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일고 있는 영화 ‘1987’의 붐이 이를 반영하는 적절한 사례이다.

이제 우리는 근대 서양의 데모크라시가 차별하고 배제하고 억압하고 살육했던 비서구 인종과 민족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차별과 억압과 배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서양식 데모크라시에 의해 가장 차별 받고 배제되고 억압받는 민중당의 지도부가 자진해서 ‘촛불혁명’이라고 말하며 추종하는 것은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희극적 비극’이다.


“아테네의 여신은 흑인이었다”

그리스 문명까지 조작한 유럽 근대인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위에서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그리스 시대를 말한다. 헝가리 출신 마르크스주의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 서문의 첫 문장이다. 이 서문에서 루카치는 그리스 문명을 유럽 문명의 고향으로 말하면서, 두 문명의 조화로운 일체성을 예찬했다.

내가 이 글을 읽은 것은 대학생(국문과) 때였다. 당시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에 약간 감동을 받았다. 다만 처음에 나오는 ‘별이 빛나는 창공’에서, 별이 있는 밤하늘이 어떻게 ‘창공(푸른 하늘)일 수 있는지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했다.

아무튼 지금도 이 서문은 미문(美文)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고 《소설의 이론》은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 명저로 인식되고 있다. 2000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이 《소설의 이론》의 첫 문장을 낭송하면서 개막되었다고 한다.

내가 유럽 문명의 허구성을 알고 공부하게 된 지는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이 한국의 지식계도 많이 밝아져서 이제는 유럽중심주의가 인종차별과 제국주의 사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유럽 제국주의사관이 일본 식민사관의 원조라는 인식까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유럽중심주의(모양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진정한 ‘자주’를 이룰 수 없다는 말을 틈나는 대로 하는 입버릇이 생겼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지겨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소개하려는 책 《블랙 아테나》(2006년)는 다른 사람들의 글로 대신하기로 한다.

1. 학문에 똬리 튼 ‘가짜 신화’
최갑수 (서울대교수·서양사, 2006. 1.21. 중앙일보)

부자가 되면 족보부터 만든다던가? 유럽의 '역사 만들기'도 그런 혐의가 짙다. 당신이 혹시 학교시절에 "찬란한 유럽문화사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고, 로마시대의 영광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배웠다면, 이제 그것을 의심해볼 때가 됐다. 문제작 '블랙 아테나'(마틴 버낼)의 출현 때문이다. 그 책은 그리스 문명의 뿌리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 동방문명이라고 폭로한다. 엄연한 이 학술서의 저자는 놀랍게도 유럽인. 주 타격 목표는 유럽중심주의라는 가짜 신화다. 18세기에 급조된 '유럽중심주의 족보'를 들여다봤다.

문제가 되는 유럽중심주의는 민족중심주의의 한 변형이다. 민족중심주의란 자신의 민족.종교.언어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다른 민족이나 문화를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흔히 벌어지는 ‘타자(他者) 길들이기’의 방편이다. 문제는 그 중심주의가 서로간의 차이를 우열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중화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유럽중심주의는 중화주의와 비교해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배타적이고 유아독존적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유럽중심주의는 19세기 중엽 이후 그들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패권을 행사했다는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유럽중심주의는 제국주의 시기의 한 세기 이전인 18세기 후반에 이미 체계적인 틀을 갖추었다. 인식이 사실에 선행했던 것이다.

17세기 말까지도 유럽 정체성의 기반은 기독교. 16세기 이후의 이른바 팽창의 시기에 유럽이 타자에게서 발견한 것은 그런 정체성을 반영하는 차이였고, 왕왕 우월감을 드러내는 경우에도 오히려 열등감의 표현이기 십상이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중심주의에 변화가 나타났다. 유럽 서북부는 스스로를 ‘문명’으로 인식하고 자신만이 ‘근대성’을 이룩하는 ‘진보’를 성취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우월성을 과거에 투사했다.

스스로 고전문명의 유일한 상속자로 자처하면서 과거의 주인이 되었다. 아프리카는 ‘역사 없는 족속’이고 아시아는 한때 고도의 농경문경을 가졌지만 이제 ‘정체’되었으며, 그러기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킨 자신만이 ‘역사’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계몽사상은 진보를 발명했다고 하나 사실은 ‘후진성’을 발견한 것이다. 또 문명과 보편주의의 이름 아래 비유럽세계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다.

더욱이 유럽중심주의는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자본주의 세계질서에서 통합과 배제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유럽중심주의가 비 유럽인들에게조차 고질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학문이라는 휘광과 무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을 전후하여 유럽의 전통적인 대학은 인문학과 사회과학, 심지어 자연과학조차 유럽중심주의를 거대한 지적 체계로 재생산했다.

전통적으로 통치자의 학문이었던 인문학은 이제 국민적(유럽적) 정체성의 관리자가 되어 역사학은 진정한 변화를 경험한 유럽만을 다루고 유럽 탄생 이전의 과거를 독점하기 위해 고전학이 틀을 잡았다. 역사 없는 족속들은 인류학의 대상이 되었고,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의 포로가 됐다. 학문이 권력관계의 반영임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이제 그것들은 유럽의 세계지배를 정당화하는 체계적 지식을 제공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도처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럽의 패권이 무너졌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에는 대안적 질서로 이어지지 않고 미국의 패권으로 대체된 것이었다. 유럽중심주의는 서양중심주의라는 더 정교한 체계로 바뀐 것이다.

마침 번역 출간된 마틴 버널의 ‘블랙 아테나’나, 프랑크의 ‘리오리엔트’, 또는 조셉 폰타나의 ‘거울에 비친 유럽’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값진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중심주의는 아직도 굳건하며, 구미의 세계지배를 뒷받침하고 있다. 학문은 축적된 지식체계로서 문서 창고이자 도서관이어서 기후의 변화처럼 현실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권력관계의 변화만으로 유럽중심주의가 바뀌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제 적지 않은 비 서양권의 나라들이 지식의 체계적인 축적을 가능케 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고, 예컨대 인도의 역사학은 이제 대안적인 역사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의 경우는 다소 복잡하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제3세계로 치부되기 어려운 성취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제국주의 지배를 당했고 유럽중심주의의 아류인 식민사관, 정체사관, 타율사관의 폐해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의 사학계가 절치부심하여 제시한 자본주의 맹아론이 유럽중심주의의 논리를 재생산하였으니, 그것의 극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식민사관이 우리의 경제성장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식민지근대화론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과연 현실의 변화만으로 학문적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우리의 성취가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무디게 하고 있어,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을 동남아인들에 대해 역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극복의 방법은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학문재생산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럽이 밟아 온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있음을 구성해 내는 일, 이것이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2. 내 인생의 책 - ‘블랙 아테나’
임지현(서강대 교수. 2016. 10. 2 경향신문)

베를린 외곽 포츠담에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름 궁전이 있다. 독일의 베르사유라고도 불리는 상수시(Sanssouci) 궁전이다. 이 궁전의 후방 테라스에서는 멀리 그리스·로마의 폐허 유적이 바라다 보인다. 그리스는 물론 로마제국의 군대가 포츠담까지 온 적이 없으니 그 유적은 물론 가짜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건축을 모방해 건물을 지은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로마 유적의 폐허를 본떠 건물을 지은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가짜 폐허의 건축양식이 아니라 멀쩡한 건물 대신 가짜 폐허를 만든 프리드리히 대왕의 심리상태이다.

마틴 버낼의 《블랙 아테나》는 비싼 돈을 들여 가짜 폐허를 만든 프리드리히 대왕의 심리상태를 엿보게 해주는 책이다. 유럽 문명의 원류라고 간주되는 그리스·로마의 역사와 어떻게든 맞닿아보려는 프로이센의 서양 콤플렉스가 그 가짜 소동의 밑바닥에 있다.

전후 독일의 아데나워 총리가 엘베강을 건너 프로이센 지역으로 들어갈 때마다 바뀌는 풍경을 보고는, “아, 이 아시아”라고 탄식했다는 일화는 비록 가짜일지라도 그리스·로마의 폐허를 만들어야겠다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콤플렉스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만약 ‘서양’ 문명의 원류인 그리스가 이집트와 페니키아, 셈족의 영향 아래 형성된 문명이라면, 프리드리히 대왕의 콤플렉스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블랙 아테나》는 고대 그리스 문명을 유럽사의 내러티브에서 구출해 아프리카와 중동, 소아시아의 역사적 흔적을 복원함으로써 더 이상 가짜 폐허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타이르는 책이다.

3. 그리스 문명에 대한 환상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2017. 11. 21 프레시안)

마틴 버널(Martin Bernal)이 쓴 <블랙 아테나(Black Athena)>는 제목부터가 좀 묘한 느낌을 준다. 아테나 여신은 아테네시의 수호신이므로 백인의 용모를 가진 것으로 생각될 법한데 마치 흑인인 것처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는 아테나 여신이 이집트 북부의 사이스(Sais)라는 도시에서 숭배하던 네이트(Neith)신으로 그 신격이 옮겨온 것이라고 하니 아주 엉뚱한 이야기는 아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문명이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하는 서양학자들의 전통적인 주장을 반박한다. 그리스가 기원전 3,000년 이후 한때는 이집트의 식민지가 되기도 하는 등 여러 차례 침략을 받았고 그러면서 언어와 제도 등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페니키아인들로부터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 이런 주장은 그리스 문명의 자생적인 발전을 주장하는 기존 학설에 도전하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근대 헬레니즘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리엔트의 영향을 인정했고 그런 사실이 18세기까지도 받아들여져 왔는데 19세기의 유럽인들이 그것을 부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세기는 인종주의가 한창 세력을 떨칠 때이므로 그 세계관에 맞추어 그리스 문명이 열등한 햄계나 셈계 인종에 속하는 이집트나 페니키아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다. 그리스 문명을 아리아족의 순수한 토착 백인문명으로 포장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그리스 문명의 성격과 관련해 매우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으므로 논란이 클 수밖에 없었다. 환영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리스 문명의 순수성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버널에 대한 인신공격은 물론이고 이것을 '문화전쟁'으로까지 확대 해석하여 거칠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 책이 아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버널의 주장들이 고고학적 증거보다 신화나 언어학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므로 신뢰성이 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가 더 진행될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그리스를 연구한 19세기 서양학자들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 문화를 과대평가하고 고대 동부 지중해 지역의 역사에서 그리스사가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하도록 만든 배경에 인종주의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은 사람들이 고대 동부 지중해 지역에서의 폭넓은 문화교류에 눈을 돌리게 하는 데도 기여했다. 반드시 이집트에서 그리스로의 일방적인 영향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접한 지역 사이에서의 문화적 교류를 부인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헬레니즘 이데올로기의 독성에 대한 해독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일부 발췌 글임)

4. 맺음말

《블랙 아테나》의 저자 마틴 버낼은 죄종적으로 코넬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2013년 타계했다. 젊어서 영국에서 중국 현대사를 강의한 그는 열렬한 마오쩌둥 지지자였다. 그는 한국과 베트남 등을 문화의 힘이 큰 나라로 인식했다.

중년이 넘어 그의 관심은 중동으로 옮겨갔다. 《블랙 아테나》 한국어 번역본은 1, 2권 합쳐 1,800쪽에 달하는 저작이다. 그리고 《블랙 아테나의 반본 – 마틴 버낼이 비평가들에게 답하다》가 2017년 11월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방대한 저작물의 핵심 주제를 3가지로 압축하여 제시한다.

1.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와 페니키아 문명이 아니고서는 성립될 수 없었다.
2. 그리스 문명은 근대 유럽인들에 의해 유럽 문명의 고향으로 왜곡, 조작되었다.
3. 그리스 문명의 조작은 유럽인의 인종차별과 제국주의 사관으로 직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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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나태영  2018년1월22일 17시26분    
탁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속이 후련합니다.
(93) (-65)
 [2/2]   민폐  2018년1월22일 18시31분    
넌누구니 갑수님 참으로 공허한 그야말로 이빨삼치기

넌누구
진보아님 보수

너의 정체는
진보 아님 보수정책

자고로 큰틀에서
개인의가치을 중시하면 진보
국가의 가치을 중시하면 보수 일진데

사람도 그렇구 정책도 그렇구 구별하기란 아마 알파고도 으메 헷갈려 일텐데
홍준표 수구꼴통 족속들과 같이 갑수님도
이를 자꾸 의식적으로 관념 이념화 시킨다

보수,진보 구별이 얼마나 꼴갑 코메디인지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쟁에서
볼수있다

자한당,국당 바당 종자들 자칭 건전한 보수를 참칭힌다
근디 단일팀 구성두고
개인의 땀과희망 국가의 이름으로 희생강요 갑질 정의를외쳐된다
이 표현돼로 구별하자면
자한당, 국당 ,바당 종자들은
진보 보수 어느쪽입니 꽈

유럽유럽하는데 대표적 유럽국가 독일
땅값을 규제하고
내땅에 내집짓는데 평수부터 호화까지 국가가 규제 통제를한다
곱배기에 곱배기더해 따따따따블 세금 낸다해도 말이다

분명한것은
똥도 미국 유럽 똥이 좋아서가 아니라
답은 간단혀
저들이 우리들 보다 잘사니까

우리 미국차보다 비싸도 왜 독일차타냐구
좋다구하구 폼나서

넘 과유불급도 모자란만 못하지만

알수없는 그놈의 보수,진보을 이념,관념화 시키는것도 문제

독일은
진보 보수가치 어느쪽을 추구하는 나라 입니꽈
(92)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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