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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46
풍석 서유구, 국가 쇠운기 조선 지식인의 전범
김갑수 | 2018-01-17 14:50: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풍석 서유구, 국가 쇠운기 조선 지식인의 전범

《풍석 서유구》(진병춘 저), 이 책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사색해 볼 안건을 던져준다. 풍석 서유구는 조선의 쇠운기에 살다 간 인물이다. 그는 1764(영조 40)년에 태어나 1845(헌종 11)년에 죽었다. 따라서 그의 생애는 조선 국운의 최후 성세기였던 정조 대와 쇠퇴기의 시작이었던 순조, 철종 대에 걸쳐 있다.

당시는 북학파를 필두로 한 ‘실용지학’이 융성한 때였다. 다만 실용지학이라고 해서 성리학과 별개로 구별되는 학문은 아니다. 실용지학은 국운이 기울어가고 민생이 어려워지고 있던 당시의 시대적 산물이었다. 이런 점에서 성리학자이면서도 실용지학을 연구하고 실천하면서 방대한 저작을 남긴 서유구는 시대적 전범을 보인 지식인이라 할 것이다.

서유구의 삶과 저작을 살펴보면, 그는 당대 북학파를 비롯한 실용지학을 추구한 학자들 중에서 단연 발군이다. 게다가 그는 81세까지 장수하면서 학문과 농사를 멈춰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다른 인물에 비해, 예컨대 연암 박지원이나 다산 정약용에 비해 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이유를 풍석이 연암이나 다산보다 탁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즉 일본인들이 왜곡해 놓은 조선 역사는 최선을 감추고 차선을 부각시킨 역사였다.

“책을 읽은 느낌은 안개가 걷혀가는 언덕에서 밝은 햇살 속에 빛나는 풍성한 산야를 바라보는 듯한 설렘이다.”

이 책의 서두에 있는 추천인의 말인데 나의 느낌을 대신 표현해 준 것 같다. 위 문장 그대로 풍석 서유구는 ‘밝은 언덕’과 같은 인물이었고 ‘풍성한 산야’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후손으로서의 우리에게 자부심을 안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인적인 인물이 아니었을까 한다.

역사적 인물은 도덕성이나 실천성만으로는 기억되지 않는다. 역사적 인물을 기억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인은 ‘업적’이다. 다소 세속적인 어감을 갖기도 하는 ‘업적’은 ‘타인들에게 널리 미치는 좋은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서유구는 도덕성과 실천성 외에도 남다른 업적을 갖추었기에 연암이나 다산보다 더욱 상찬되어야 마땅한 인물이다.

서유구는 26세 ~ 42세까지 16년 동안 관직에 몸담았다. 이후 그는 자연으로 물러나 17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연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59세에 다시 등용되어 청렴하고 유능하게 목민관직을 수행했고 다시 물러나서는 농사와 어업에 종사하면서 농업 연구와 저술에 몰두했다.

74세에 관직에서 은퇴한 그는 서울 근교(지금의 강북구 번동)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또다시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 실험과 저술을 이어 갔다. 그는 81세에 죽었는데 그가 30년 동안 반평생을 기울여 집대성해 놓은 저작이 우리가 제목으로만 알고 있는 《임원경제지》이다.

《임원경제지》는 252만 자의 방대한 저작물이다. 200자 원고지로 1만 2,600장이며 한글로 번역하여 요즘의 책으로 낸다면 최소 25권 정도는 될 분량이다. 사실 나는 이 엄청난 책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저작물은 목차만으로 볼 때에도 ‘위대한 저작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총 1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임원경제지》는 1권 <본리지> 곡식 농사, 2권 <관휴지> 채소 약초 농사, 3권 <예원지> 화훼 농사, 4권 <만학지> 과실나무 농사, 5권 <전공지> 길쌈 농사, 6권 <위선지> 기상 천문, 7권 <전어지> 목축 양어 양봉 사냥 어로, 8권 <정조지> 음식 요리, 9권 <섬용지> 건축 도구, 10권 <보양지> 건강 양생, 11권 <인제지> 의학, 12권 <향례지> 의례, 13권 <유예지> 교양, 14권 <이운지> 문화예술, 15권 <상택지> 풍수지리, 16권 <예규지> 상업 등을 다루고 있다.

개론의 제목만으로도 놀랄 만하지 않은가? 각론으로 들어가 보면 더욱 감탄이 나온다. 너무도 정교하고 치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자랑스러운 저작물을 아직 번역도 끝내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번역에 착수하여 지금 마무리 공정 중인 것으로 안다. 쓸모도 별로 없는, 더구나 유럽 중심의 제국주의 사관까지 드러내는 유럽 철학자들의 번역은 과도할 정도로 쏟아져 나와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은 ‘문화 식민지’라는 말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풍석 서유구는 문과에 급제한 이래 비교적 순탄한 관직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권력과 이권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평생 내내 농민들의 삶에 있었다. 그는 손수 모를 심고 벼를 베고 나무를 심고 장을 담그고 고기를 잡았다. 그는 어떻게 하면 농업 생산력을 높여 민생을 향상시키는지에 전심전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경학에 소홀했던 것도 아니다. 그는 사대부에게 필수적인 덕목인 유학의 경전들을 젊어서 이미 익혀 놓았다.

저자 진병춘은 《임원경제지》의 정신을 3가지로 말하고 있다. 하나는 ‘지식의 목적’이다. 서유구는 지식의 목적을 ‘관직을 가진 사대부로서 세상을 구제하는 데’에 두지 않고 ‘백성이 사는 데 필요한 내용을 밝히는 데’에 두었다.

둘은 ‘지식의 대상’이다. 서유구에게 있어 삶이란 ‘지식에 토대하여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노동하는 삶’이었다. 나아가 서유구는 노동하는 삶만으로는 온전한 삶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지식의 대상에는 '인간으로서 품격과 교양을 쌓는 것‘도 포함되었다.

셋은 ‘지식의 주인’이다. 서유구는 지식의 주인이 통치자가 아니라 백성임을 명백히 했다. 이것은 교화의 대상을 왕뿐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까지 두었던 삼봉 정도전의 정치철학과 거의 일치한다.

우리는 실제로 있지도 않았던 ‘실학’이라는 일제시대 발명된 단어로 이 시대의 실용지학을 규정해왔다. 그러고서는 다산 정약용을 ‘실학의 집대성자’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나 다산은 실제 농사를 짓지도 않았고 연구와 저작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또한 그의 저작이 모아져 있는 《여유당전서》의 목록을 보면 과연 그는 실용지학을 한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산의 저작은 시문집, 경집, 예집, 악집, 정법직, 지리집, 의학집 등으로서 ‘실용지학’과는 거리가 있다. ‘정약용이 실학의 집대성자’라는 말에서, ‘실학’도 허구이고 ‘집대성자’라는 말도 팩트와 다른 것이다. 우리가 서유구를 통해 사색해 볼 안건은 이래저래 여러 가지라는 것이다.

서유구는 세도정치가 극성을 부린 국가 쇠운기에 눈을 감았다. 그는 자기의 30년 노고의 결산인 《임원경제지》가 제대로 출판되지도 못함을 애석해 했다. 이것을 맡길 만한 후세나 후학조차 없었다. 나는 바로 여기에 조선 쇠운의 이유가 있다고 본다. 선대의 좋은 유산을 이어가지 못하는 나라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아니 나라가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대의 유산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생물이란 무엇인가 (1)

생물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고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생물이 무엇이고 생명현상이 무엇인지를 답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런 질문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수만 년이나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분자생물학자 김웅진이 저술한 《생물학 이야기》(2015)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과학책이다. 나는 젊은 시절 ‘연어의 모천회귀와 취각구조’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이것이 분자생물학과 다소간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학문에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학문에 개인적 호감을 가질 수는 있다. 나는 이론물리학과 함께 분자생물학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터에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학자의 책을 만나게 돼서 반가웠다. 더구나 이 책은 대단히 흥미롭고 유익하며 세련된 저작물이다.

생물의 종류는 무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지만 모든 생물의 행동에는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목표가 있다. 그것은 ‘생존과 번식’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자연물에는 두 부류가 있다. 무생물과 생물이다. 옛 사람들은 무생물과 생물이 확고히 다른 존재라고 믿었다. 또한 근세의 사람들도 동물과 식물, 인간과 동물이 다른 존재라고 믿었다. 생명에는 신비스러운 비물질적인 요소가 들어있고 심지어 초자연적인 무엇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은 하나같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을 따름이다. 생물체가 특별하게 보인다든지 생명현상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일종의 일루전(illusion, 착시)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관건이 되는 핵심 용어는 ‘진화’이다. 이제 어떤 과학자도 진화가 생물학의 대통합이론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진화의 논리에 의해서만이 생물학의 어떤 내용도 이치에 부합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생명의 진화 과정은 ‘장엄한 드라마’ 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파편적인 사건들의 반복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으로 일관성 있게 점철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현대에 들어 생물학은 종래의 빈곤하고 비현실적인 신화적 세계관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깊이와 설명력과 사실성을 갖는 본질적인 첨단학문으로 올라섰다.

지구 최초의 생명체는 ‘자기 자신을 닮은 복제물을 만들 줄 아는 유기물 분자’였을 것이다. ‘생명의 기원’이라고 하면 거창한 주제로 느껴진다. 그런데 기실 이 거창한 주제는 ‘최초의 자기복제분자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의 문제로 회귀한다.

나아가 생명은 스스로 자기복제를 함과 거의 동시에 자연선택에 의한 다윈적인 진화를 하는 분자복합체가 발생함으로써 탄생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성사되는 데 가능성이 극히 낮은 확률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언젠가 이론물리학 책에서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될 수 있었던 확률을 고물상에 폭풍이 몰아쳐 보잉기가 만들어질 확률로 비유해 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확률이 낮더라도 시행횟수가 거의 무한대로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된다.

최초의 생명체는 단일종으로 수렴된다. 1,000만 년 전만 해도 호랑이, 사자, 고양이가 같은 종이었다. 사람과 침팬지와 보노보는 600만 년 전 공동의 조상에서 갈라졌으며 현생 인류는 약 6만 년 전 북부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람과 가장 유사한 동물은 침팬지이다. 침팬지의 해부학적 구조 중에서 인간과 닮은 것은 48가지, 원숭이와 닮은 것은 27가지라고 한다.

진화는 다양성을 선호한다. 다양한 유전자 풀을 가져야 변화하는 환경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양성이 없는 획일화된 공동체일수록 수명이 짧다는 사실과 어떤 연관을 가지는 것일까?

자연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은 원칙적으로 하나의 과학이다. 다만 생명현상의 특이성으로 말미암아 자연과학은 편의상 물리과학과 생물과학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생물과학에서 생물학적 원리는 분자생물학과 진화이론으로 충족된다.

[내 몸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은 동물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니 사람은 동물이다. 사람과 동물이 약리적, 생리적으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공통성이 대단히 크다. 인간에게 중요한 약제와 의술인 항생제, 진정제, 진통제, 인슐린과 백내장 수술, 근관치료술, 심장박동기 설치 등은 동물과 공용된다.

인간과 파충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가지고 있다. 옥시토신은 뇌에도 기능을 한다. 옥시토신의 분비량이 높은 동물은 암수 한 쌍이 지속적으로 유대관계를 가지고 낮은 동물에게서는 군거잡혼이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옥시토신은 한 사람을 길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다. 포유류에게 옥시토신은 생식행위를 유도하고 자궁 수축으로 출산을 촉진하고 젖샘을 자극하여 수유에 관여한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살필 때, 몸이란 유전자의 영속화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생물들은 자신의 노력과 분투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본질적으로 유전자를 위한 것이다. 몸은 죽어 없어지지만 유전자는 새로운 운반체, 즉 후손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존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불교의 윤회설에서 말하는 영혼이란 바로 이 유전자와 대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 몸의 진짜 주인은 유전자인 셈이다.

첨단화된 현대사회라고 하지만 여전히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방식은 수렵채취 형태였다. 그렇기에 수렵채취에 적합한 유전자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사람은 사진 속의 산이나 건물이 달라지면 알아채지 못하지만 동물들의 움직임은 예민하게 감지해낸다.

남자가 여자보다 공간 감각이 발달했고 여자가 남자보다 위치 감각이 발달한 것도 수렵채취적인 유전자 때문이다. 수백 년 동안 남자는 움직이는 동물들을 사냥해야 했고 여자는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의 소재를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식물은 자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며칠에서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여성들이 꼼꼼하게 생일이나 기념일을 잘 기억하는 것도 이런 데에 연유가 있다는 것이다.

원시부족사회에서 사람의 사망 원인 중 서너 번째가 독뱀에게 물린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뱀에 대한 공포 유전자가 있다. 뱀을 두려워하는 것은 영장류나 쥐에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선천적 유전과 후천적 학습의 관계 (2)

아메리카 곰은 갈색인데(불곰) 북극곰은 흰색(백곰)이다. 왜 그런 것일까? 눈과 얼음뿐인 북극에서 하얀 색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은폐와 먹이 사냥 등에 유리하다. 결과 여러 색깔의 곰 중에서 흰색 털을 가진 곰들이 북극에서 살아남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자연선택 –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다윈은 “사람에게는 육체적, 심리적으로 동물로부터 유래된 지울 수 없는 흔적이 있다.” 고 말했다. 이것은 사람의 조상이 침팬지와 같다는 말이었다. 당대 유럽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인간의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것은 1859년이다. 원 제목은 ‘자연선택 혹은 생존경쟁에서 선택된 종족의 보존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해서’였다. 다윈의 저서들에는 사람과 동물의 행동과 심리의 유사점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당연히 동물에게도 지능이 있다. 또한 다윈은 남녀의 성격과 감정의 차이를 고찰했다. 그런데 다윈은 인간 평등주의자였다. 그는 남녀차별과 노예제도에 반대했다.

이처럼 객관적인 과학 연구는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다윈은 “개코원숭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존 로크보다도 철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요컨대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동물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하는 것이 철학보다 더 유용하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존 로크는 부도덕한 철학자였다. 그는 유럽인의 아메리카 착취의 정당성을 강조한 제국주의자였다.

현대에 들어 인간의 정신현상은 철학, 심리학, 정신분석이 아니라 생물학의 새로운 분야인 인지신경과학이 규명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이 다루던 마음의 문제를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뇌의 영상을 관찰하여 환자들에게 정확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탐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로이트와 라캉 유의 정신분석 및 치료법은 사장돼 가고 있다.

우리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 자체를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이다. 즉 적자생존이 진화의 원리이므로 인간 역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인데 이것은 명백히 사실과 가치를 혼동하는 오류이다.

또 하나의 자연주의적 오류가 있다. 자연 현상을 인간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오류이다. 다시 말해 자연현상을 의인화해서 교훈을 얻으려는 태도이다. 예컨대 부지런한 개미는 좋고 게으른 베짱이는 나쁘다는 식이다. 이렇게 보기 시작하면 박쥐와 여우는 나쁘고 소와 곰은 좋은 동물이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가리켜 ‘이솝의 오류’ 정도로 명명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자연 현상에는 윤리적 우열이 없다. 이런 점에서 노자가 말한 ‘천지불인(天地不仁)’ 은 가장 이른 시대에 개진된 자연에 대한 혜안이었다.

“당신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말은 할아버지한테 들었나요, 할머니한테 들었나요?” 이것은 진화론에 반대하는 주교 윌버포스가 진화론 옹호자 토마스 헉슬리에게 던진 질문이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자기 조상을 욕되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윌버포스는 제 깜냥에 기발하다고 여겨서 던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명백한 편견과 오류가 있다. 먼저 윌버포스는 원숭이는 나쁜 것, 인간은 좋은 것이라는 인간 기준의 자연관이 전제되어 있다. 또한 여기에는 진화론이 ‘원숭이가 (하루아침에) 인간이 된 논리’라는 무지로 인한 강변이 개재되어 있다. 진화론은 이렇게 단순한 논리가 아니다. 《종의 기원》은 시종일관 논리적인 체계를 유지하는 길고도 견고한 저작이다.

근대 서양에는 유전적 진화론을 정치적, 이기적으로 적용한 학자들이 적지 않았다. 사회진화론을 주장한 스펜서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우생학이나 인종주의 그리고 엘리트주의 같은 것들이 또한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다윈은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이타적인 연민과 공감의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강조했다. 다윈처럼 정확히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다.

나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명민함을 인정하지만 유전적 진화 논리를 문화현상에까지 적용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생물학이 아닌 다른 것을 전공하는 우리가 과학에서 배워야 할 것은 과학적 정신이지 과학적 방법론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 생물학은 분자생물학에 바탕을 두어 전개된다. 분자생물학은 DNA와 단백질을 위주로 한다. 모든 생명현상은 분자적 현상과 분자적 진화에 기초를 둔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거의 같은데도 외형이 크게 다른 것은 단백질의 미세한 차이와 각 유전자에 달려 있으면서 조절 부위를 가동하는 유전자 조절의 차이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말이다. 사실 이 말처럼 엉터리는 없다. 사고하는 이성을 과장되게 신뢰한 것은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이 지닌 맹점이다. 데카르트는 17세기 사람이니 그리 오래 전 사람도 아니다. 데카르트는 정신을 비물질적인 존재로 여겼고 육신과 정신을 구별하는 이원론에 빠져 있었으며, 몸을 움직이는 뇌의 기능과 별도로 사고를 일으키는 영혼은 송파선을 통해서 뇌로 들어간다는 해괴한 주장을 폈다.

흔히 하는 말로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가 있다. 이 말은 머리와 가슴이, 즉 이성과 감정이 별개라는 이원론이 전제된 것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머리와 가슴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우리는 이것을 ‘마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데카르트의 인간 이해는 서양인들이 흔히 쓰기 좋아했던 말로 ‘근대적’인 것도 아니었다. 아니, 서양인들의 ‘근대’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현대 생물학은 뇌과학으로 연구 대상을 확장했다. 인간의 사고와 감각을 지휘하는 것은 모두 뇌에 있다. 인간의 지능은 뇌의 신경세포가 조직화되는 방법에 의해 나타난다. 인간은 한 번 태어나고 나서 뇌의 신경세포 수가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뇌의 신경구조는 변화할 수 있는데 이것을 추동시키는 것이 학습이다. 이것은 인간은 학습을 통해 지능과 감각을 발달시킬 수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학습 만능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학습 만능론은 어린 사람들과 피교육자를 억압한다. 레닌의 볼셰비키 당은 인간의 행동을 학습을 통해서 통제할 수 있다는 파블로프의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파블로프의 개’로 회자되는 개의 침 분비 ‘조건반사론’을 주장한 파블로프는 “인간은 태생적 한계를 학습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다소 무리한 주장을 폈다.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에는 사상교육을 통해 인간을 이타적 존재로 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이가 많은데, 당연히 그들은 유전학을 외면한다. 그렇다면 선천적 유전과 후천적 학습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아주 오래 전 유학에서 말한 ‘중용’ 이외의 답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부언] “이 책(《생물학 이야기》)은 초기의 생명체 탄생부터 오늘의 생물 현상에 이르기까지 그 진화 과정을 명쾌하고 쉽게 서술하고 있다. 단순히 생물학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생물과 관련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유기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마치 한 권의 ‘생물학적 인생철학서’를 읽는 듯한 몰입을 불러일으킨다.” (가종억, 응용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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