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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과 밥상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훈장은 받지 않는 것만 못하다
정운현 | 2018-07-04 11:53:1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근 50년 전, 초등학교 시절 얘기다. 어느 해 봄,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시교육청 주관 사생대회에 나가게 됐다. 그림에는 소질이 없던 나여서 별 흥미를 갖지 못해 대충 하나를 그려내고 일찍 집으로 왔다. 며칠 뒤 조회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사생대회 결과를 발표하시면서 내게 상장을 주셨다. 장려상이었다. 내 생애 처음 받아본 상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장려상은 참석자 거의 대부분에게 주는 상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상에 대해 관심을 껐다. 그래서 그런지 상복도 없다.

2.
20여 년 전, 현역기자 시절 얘기다. 박정희 대통령 연재를 하면서 그와 인연이 닿았던 예비역 장성, 전직 고관들을 많이 만났다. 대개 연세가 있다 보니 외부보다는 집에서 만나는 걸 좋아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또 압도되었다. 거실 벽에는 별을 두 세 개씩 단 현역시절 복장차림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 혹은 아래에는 이런저런 훈장들이 사진보다는 조금 작은 액자에 담겨 줄지어 걸려 있었다. 훈장이란 저런 용도인가 싶었다.

모 전직 장관의 평창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1층 거실에서 차를 한잔 마시면서 필요한 얘기를 다 듣고 집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 때 그가 “지하에 구경거리가 많다”면서 나를 불러 세웠다. 호기심에 나는 그를 따라 내부계단을 거쳐 지하실로 들어섰다. 처음엔 무슨 박물관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가 받은 훈장들을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국내외에서 받은 훈장, 기장이 얼추 스물은 넘어 보였다. 그만하면 그로선 자랑하고 싶었을 만도 해보였다.

3.
10여 년 전, 정부 산하 위원회에서 사무책임자로 일할 때 얘기다. 위원회 출범 2년차 연말로 기억된다. 하루는 행자부(현 행전안전부)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이 조만간 서훈대상자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연말이면 공무원들에게 정부에서 훈장을 주는 데 우리 위원회 몫도 하나 할당돼 있다고 했다. 정식 훈장보다는 한 등급 낮은 무슨 포장(褒章)이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놓고 작은 논란이 있었다. 이왕이면 승진에 도움이 되도록 정부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을 주자는 의견과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은 외부인사(연구자)에게 주자는 의견이 엇갈렸다. 위원회 출범 2년차여서 아직 공이라고 내놓을만한 것도 없었다. 결국 특별한 공이 있어서 훈장을 주는 게 아니라 연례행사의 일환으로 미리 훈장을 따놓고 나눠 먹기를 하는 식이었다.

고 김종필 전 총리의 빈소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놓여 있다

4.
최근 타계한 김종필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한 것이 논란이 됐다. 정부는 ‘총리 봉직’을 공적사유로 들고 있는 데 그렇다고 전직 총리 모두에게 준 것도 아닌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465명당 한 개꼴로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반면 일본은 1,960명당 한 개꼴, 영국은 3,750명당 한 개꼴이다. 영국의 8배에 해당하는 셈이니 가히 ‘훈장 천국’이라고 할만하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사법농단의 ‘주범’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지난 연말 퇴임하면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2010년 사망 후 대전현충원 안장과 함께 이 훈장을 받았다.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훈장은 받지 않는 것만 못하다. 아무리 싸구려가 됐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훈장이 누구나 받는 밥상은 아니지 않는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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