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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2탄] 육당 최남선의 자녀들
정운현 | 2017-12-05 13:19: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육당은 12세 때인 1901년 4월 현정운(玄晶運)의 6녀(당시 15세)와 결혼하여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남녀 불문하고 자녀들의 이름은 전부 ‘漢’자 돌림으로 썼다. 특히 장남 차남 삼남의 이름을 한인, 한웅, 한검으로 지은 것은 그의 단군숭배 사상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육당 연보>에 따르면, 자녀들의 출생일자, 신상변동 등은 다음과 같다.

- 장녀 한옥(漢玉) : 1904년생(육당 나이 20세)
- 장남 한인(漢因) : 1915년생, 1952년 사망
- 차남 한웅(漢雄) : 1917년생
- 삼남 한검(漢儉) : 1922년생
- 차녀 한기(漢己, 또는 漢奇) : 1924년생, 1928년 사망
- 사남 한혁(漢赫) : 1939년생(육당 나이 50세)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장녀 漢玉은 인민군에 피살되고 사위 강건하(姜乾夏)는 납치되었다. 또 삼남 漢儉은 ‘행방불명’되었다. 육당은 대구를 거쳐 부산에서 장남 漢因과 함께 피난살이를 하다가 1952년 3월 서울로 올라왔다.)
자녀들 가운데 그나마 기록이 몇이라도 남아 있고, 또 그 나름의 활동을 한 사람은 장남, 차남, 삼남 등 셋이다.

1) 장남 한인(漢因) :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보인다. <매일신보> 1945년 4월 28일자 2면에 ‘새 의박(醫博) 두 분’이라는 기사에 최한인(崔漢因)의 박사학위논문이 경성제국대학 교수회의를 통과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매일신보> 영인본 85권, 482쪽, 경인문화사) 그러나 漢因은 1952년 7월 37세로 사망하면서 이후 행적은 끊어지고 말았다. 그의 사인은 알려진 것이 없다.

최한인의 경성제국대학 부수(副手, 부조수) 신분증명서 앞면. 증명서 발행날짜는 소화 14년(1939년) 6월 10일자임

2) 차남 한웅(漢雄) :
경성 제2고보(경복고 전신)를 거쳐 형 한인과 같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로 40년간 재직하다가 정년퇴임했다.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대한소아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내 소아감염학의 태두로 불린다.

해방 직후(1945.10) 육당이 ‘동명사(東明社)’를 재건하여, 차남 한웅에게 실무를 맡겼다. 이런 인연으로 한웅은 동명사에서 이공계 책을 비롯해 육당의 유고집도 발간했다. 특히 ‘육당시조시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해오고 있다. 그 자신 역시 월탄 박종화(朴鍾和)의 추천으로 <현대문학> 등에 시와 수필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시집으로 <가난한 기도자에 햇님이여, 비치소서>(동명사, 1968) 등이 있다.

최한웅은 2002년 12월 28일 서울대병원에서 85세로 별세했다. 피부과 의사 국주(國柱)와 경기대 교수 득주(得柱)는 그의 아들이며, 이주룡(李珠龍) KCC정보통신회장, 이민문(李敏文) 주식회사 대왕 대표이사, 김중원(金重源) 전 한일그룹 회장은 그의 사위다.

최한웅이 경성제대 의학부 재학시절 모종의 사건으로 학교 측으로부터 견책처분을 받은 문건(소화15년, 1940년 5월 17일자

최한웅이 그린 그림(1930년)

최한웅의 글씨(제6학년, 연도미상, 평가 ‘良’)

생전의 최한웅(1985년)

3) 삼남 한검(漢儉) :
한검의 학력은 일본 교토 제3고등학교를 다닌 사실 이외에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육당 연표’에 삼남 최한검은 6.25 때 ‘행방불명’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검은 자진 월북했다. 해방 직후 한검은 몽양 여운형(呂運亨)이 위원장으로 있던 근로인민당 준비위원회 선전부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서울신문, 1947.4.15.)

한국전쟁 직전 한검은 남으로 내려왔다가 경찰에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서울고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형무소에 복역 중이던 한검은 1950년 3.1절을 앞두고 당국의 배려와 보석으로 풀려나 당시 투병 중이던 부친 육당을 만났다. (국도신문, 1950.2.28.)

월북 후 한검의 행적은 한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1998년 북한정권에서 고위직으로 있다가 망명한 신경완(가명, 98년 작고)씨의 증언으로 일부가 밝혀졌다. 그에 따르면, 한검은 월북 후 문학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그 학교가 1960년대 초 김일성대학 문학부로 흡수되면서 거기서 다시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과학원 어문학연구소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당시 한검은 부친의 친일행적 때문에 더러 곤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증언 반민특위>, 정운현 엮음, 1999, 삼인, 259~260쪽) 한검의 사망연도는 알지 못한다.

최한검이 일본 교토 제3고등학교 재학시절 서울 본가로부터 받은 편지 겉봉

최한검의 글씨(제2학년, 1930년)

2003년 1월 ‘소원’이 헐릴 당시 내다버린 자료 등 쓰레기 더미

(* 위 사진 및 자료들은 육당이 만년에 기거하던 우이동 소재 소원(素園)이 2003년 1월 철거될 때 쓰레기 더미에서 필자가 주운 것들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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