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CMS후원
2017.12.12 03:47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세계  |  미디어  |  칼럼  |  서팡게시판  |  여행게시판
 
칼럼홈 > 정운현

[최남선 1탄] 육당 최남선과 손편지 한 통
정운현 | 2017-12-04 13:09:3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본론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편지 한 통을 보기로 하자.

病患(병환)이 좀 어떠십니까. 한번 가서 뵌다는 것이 늘 말뿐이고 實行(실행) 못하야 未安(미안)합니다. 東京(동경) 瞬星(순성)에게서 郵便(우편)으로 雜誌(잡지)가 또 왔기로 보내드리오니 査收(사수)하시기 바랍니다.
1955년 3월 23일
崔承萬(최승만)
六堂(육당) 先生(선생)

(* 査收 : 물품이나 서류 따위를 조사하여 거두어들임)

최승만이 육당 최남선에게 보낸 안부편지(1955.3.23)

요즘은 구경하기 어려운 이 짤막한 손 편지 한 통에는 당대의 유명인사 세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먼저 등장인물 3인의 행적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1) 편지를 쓴 사람은 최승만(崔承萬, 1897~1984)이다. 경기도 안산 출신으로 일본 유학시절 최팔용(崔八鏞) 등과 함께 ‘2·8독립선언’에 가담하였으며, 한국인 유학생 모임의 기관지 <학지광(學之光)> 편집위원과 문예지 <창조(創造)>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동아(新東亞)>에서 근무하다가 1936년 소위 ‘일장기 말소사건’을 계기로 퇴직하였다. 해방 후에는 미 군정청 교화국장을 거쳐 연희대학(연세대) 교수, 제주대학 학장, 이화여대 부총장 등을 지냈다. 최승만은 민족계열의 지식인으로 언론계·교육계에 오래 몸담은 인물이다.

2) 최승만의 편지를 받은 사람은 육당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이다. 육당은 서울 중인 가문 출신으로 문인, 사학자, 출판인 등으로 활동하면서 근대 신문화 도입에 공로가 큰 인물이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해 신문관(新文館)을 설립하여 잡지 <소년(少年)>을 발행하였으며,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혐의로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동명사(東明社)를 창립해 주간지 <동명>을 발행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시대일보>로 재창간되었다.

그러나 육당에 대한 찬사는 여기까지다. 출옥 당시 이미 일제의 배려가 있었고, 이후 조선사편수회 위원,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친일신문 <만몽일보(滿蒙日報)> 고문, 만주국 관리양성소인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를 지냈으며, 일제말기에는 학병권유 연설을 하기도 했다. 육당이 만주 건국대학 교수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친구인 위당 정인보(鄭寅普)는 육당의 집 앞에 거적때기를 깔고서 “이제 우리 육당이 죽었다”며 대성통곡을 했다고 전한다.

말년의 육당 최남선

3) 편지 속에 등장하는 ‘순성(瞬星)’은 진학문(秦學文, 1894~1974)이다. 일본 유학시절 최승만과 함께 <학지광(學之光)>의 총무를 지냈으며, 귀국 후 <오사카아사히신문(大阪朝日新聞)> 경성(서울)지국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논설위원과 정경부장을 지냈다. 이후에는 육당이 창간한 주간지 <동명(東明)>과 <시대일보>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냈다.

진학문 역시 여기까지가 공로라면 공로다. 그 역시 육당처럼 만주행에 올랐다. 관동군 촉탁, 만주국 협화회(協和會·국회) 촉탁을 지냈으며, 육당처럼 <만몽일보(滿蒙日報)>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만주국 내무국 참사관, 총무청 참사관 등을 지내며 마지막에는 만주국 협화회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 만주 친일파의 거두로 불리는 그는 귀국하여 중추원 참의에 올랐다.

세 사람은 나이로는 육당(1890)-진학문(1894)-최승만(1897) 순이다. 이들은 시기는 달랐지만 일본 유학을 고리로 인연을 맺었다. 특히 육당과 진학문 두 사람은 특별한 친분을 쌓았다. 육당이 창간한 주간지 <동명>, <시대일보>에서 진학문은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냈으며, 나중에 두 사람은 만주에서 다시 만나 함께 친일의 길을 걸었다.

해방 후 이들 3인의 운명은 엇갈렸다. 최승만은 미 군정청 교화국장을 지낸 후 1948년 연희대학 (연세대) 교수를 시작으로 교육계에 몸담으면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육당과 진학문은 ‘친일파’의 낙인을 안고 반민특위에 불려갔다. 해방 후 우이동 자택(소원·素園)에 칩거하면서 집필로 소일하던 육당은 1949년 2월 7일 반민특위에 체포됐다. 여러 차례 공판을 거쳐 소위 ‘반민특위 습격사건(6.6사건)’ 후인 8월 29일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진학문이 일본서 육당에게 보낸 편지 봉투(1956.12.12)

진학문은 반민특위의 검거선풍이 불자 일본으로 도피해 한동안 기소중지 상태로 있다가 그 역시 ‘6.6사건’ 뒤인 8월 30일 불구속 송치돼 재판도 받지 않은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학문은 일제 때의 경제계 활동 경력을 인정받아 무역진흥공사 부사장, 전경련 상임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런저런 경위를 떠나 세 사람의 친교는 두터웠던 모양이다. 제일 후배인 최승만은 와병중인 육당을 자주 문안하며 위로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 일본에 체류 중이던 진학문 역시 자주 육당에게 편지도 하고 책 선물도 한 모양이다.

위 편지와 진학문이 보낸 편지 봉투는 지난 2003년 1월 소원(素園)이 헐렸다는 얘기를 듣고 필자가 소원에 구경을 갔다가 치우다 남은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것이다. 소원은 육당이 1941년부터 1952년까지 거주하던 집이다. 이것 외에도 몇 가지 더 쓸 만한 자료를 주웠는데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헐리기 직전의 ‘소원’ 모습(사진-권기봉)

소원 뒷마당에 버려진 자료들(사진-권기봉)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97 









      



모바일 기기에서도 댓글 작성이 가능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현재 아이폰 기기까지 테스트 완료하였습니다.)


닉네임  비밀번호  471554  (스팸등록방지:빨간숫자만입력)

                                                 
왜 사람들은 ‘노조’하면 색안경...
                                                 
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2...
                                                 
왜 당신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시나...
                                                 
공기업 적자, 정치인-자본-관료의 ...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한다” 송...
                                                 
[번역] 북한 핵 긴장이라는 환상 -...
                                                 
[진실의길 Story ①] 진실을 향한 ...
                                                 
文 ‘정체된 견고함’ 安 ‘불안한...
                                                 
文대통령 지지율 76.8%vs국민의당 ...
                                                 
문재인 케어 반대 투쟁위원장 ‘최...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이일규 전 대법원장의 10주기에 부...
                                                 
좀비들의 행진
                                                 
누가 글로벌 인재인가?
                                                 
유권자, 즉 국민이 ‘단일화’를 ...
                                                 
[성명서] KAL858기 실종사건의 진...
                                                 
“근혜를 보면 그 아부지를 생각한...
                                                 
[오영수 시] 임
101825 천안함 다큐 피디 사찰 논의한 MB...
59958 이명박, 당신이 갈 곳은 감옥이다
55009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퇴...
54984 천안함 인양업체 부사장 “폭발한 ...
44453 그때는 쐈고 이번에는 못 쐈다?
35084 MB 페이스북에 ‘성지순례’ 행렬...
23643 나는 ‘모양주의’라는 말을 남용...
23482 [KAL858기 사건 30주기] ① 만들어...
15330 송영무 국방장관께 드리는 공개 서...
13180 [번역] 북한 핵 긴장이라는 환상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3 진미파라곤930호 (주)민진미디어 | 발행.편집:신상철 | 등록번호: 서울 아01961 | 발행일: 2012.02.15 |
이메일: poweroftruth@daum.net | 사업자번호: 107-87-60009 | 대표전화: 02-761-1678 | 팩스: 02-6442-0472 | 통신판매: 2012-서울영등포-0188호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고/사업제휴문의 | 기사제보 | 칼럼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