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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선생 유해, 통영으로 돌아온다
윤이상 묘비 ‘處染常淨’, 설정 스님이 썼다
정운현 | 2018-01-18 13:17: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제(16일) 저녁 늦게 윤이상 선생의 따님 윤정(67·통영 거주) 선생님과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겸해 전화통화를 했다. 정범구 신임 독일대사가 윤이상 선생 묘소를 참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윤정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독일에 있는 부친 윤이상 선생의 유해를 조만간 통영으로 모셔올 계획이라고 했다. 나로선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래서 공개된 사실이냐고 여쭈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만에 하나 사전에 공개돼 혹여 일이 그르칠 것을 우려하신 때문이었다. 나는 비보도를 약속했고, 어제 밤에 쓴 블로그 글에서는 이런 내용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이상 묘비 ‘處染常淨’, 설정 스님이 썼다

최근 신임 독일대사로 부임한 정범구 대사는 지난 15일 윤이상(尹伊桑·1917~1995)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흰 국화를 바쳤다. 윤이상 선생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로 불린다. 정 대사가 이런 윤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정 대사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묘소 참배 사진 석 장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15일 윤이상 선생 묘소에 참배하는 정범구 신임 독일대사

상처받은 용(Der verwundete Drache)

-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이면서도 오랫동안 고향에서 추방당해야 했던 윤이상.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견뎌야 했던 윤이상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영하 2~3도를 오르내리는, 독일 날씨 치고는 비교적 쌀쌀한 날씨에 찾아간 묘소 한 켠에 푸르른 동백나무가 의연하게 서 있다. 지난여름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통영에서 가져와 심은, 바로 그 동백이다.
낯선 땅, 낯선 기후에 과연 살아남을까 걱정들을 많이 했지만 해외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수많은 한인들처럼 강인하게 이 겨울을 견뎌내고 있는 듯하다.

- 윤이상과 같은 해에 태어난 인물들로 박정희, 정일권, 강원룡 등이 떠오른다. 모두 나름대로 한국현대사에 한 자리를 차지한 인물들이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해에 태어난 인물들답게 모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길은 저마다 달랐다. 식민지 시대와 분단시대를 건너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 음악계 뿐 아니라 독일 음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거장의 묘소 위로 우리의 곡절 많은 현대사가 스쳐갔다.

1917년생인 윤 선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갑이다. 그런데 윤 선생은 박정희 정권 시절 소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이 일로 윤 선생은 금기인물로 지목돼 타계할 때까지 한국 입국이 불허됐다. 정 대사 말처럼 두 사람은 식민지 시대와 분단시대를 건너는 방식이 극명하게 달랐다. “거장의 묘소 위로 우리의 곡절 많은 현대사가 스쳐갔다.”는 말로 정 대사는 감회를 대신했다.

정 대사의 묘소 참배 소식을 나보다 더 반가워할 분이 국내에 두 분 계시다. 윤 선생의 부인 이수자(92) 여사와 따님 윤정(67) 선생이다. 두 분은 현재 경남 통영에 머물고 계신다. 나는 즉시 윤정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윤 선생님은 감격해 하시며 기뻐하셨다. 차후에 독일 갈 기회가 있으면 정 대사를 찾아뵙고 꼭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셨다.

윤이상 선생의 묘비 하단에 새겨진 ‘처염상정(處染常淨)’ 네 글자

평소 나는 윤이상 선생님의 묘비에 대해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묘비 하단에 새겨진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는 네 글자였다. ‘처염상정’은 불교용어인데 구체적으로는 불교의 상징인 연꽃을 일컫는다. 연꽃은 다른 꽃들과 달리 독특한 특성을 세 가지 갖고 있다.

종자부실(種子不失)
처염상정(處染常淨)
화과동시(花果同時)

종자부실.

연꽃은 씨앗이 500년, 10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연꽃은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지 다시 싹이 튼다고 한다. 이는 연꽃의 강인한 생명력을 일컬음이다.

처염상정.

일반적으로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 뻘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연꽃은 그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채 순결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이는 연꽃의 고귀한 품성을 일컬음인데 연꽃의 가장 으뜸 되는 덕성으로 꼽힌다.

화과동시.

대개의 식물은 꽃이 지고나면 그 자리에 비로소 열매가 맺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연꽃은 꽃이 피면서 동시에 열매가 맺는다. 이는 연꽃의 고유한 특성 가운데 하나다.

윤이상 선생 묘비의 ‘처염상정(處染常淨)’은 대체 어떻게 해서 새겨진 것일까? 혹시 윤이상 선생이 불교신자여서 유언을 한 것일까? 나는 윤정 선생님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명료했다.

“1995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설정 스님(현 조계종 총무원장)이 독일로 오셔서 49재를 지내주셨습니다. 설정 스님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작은고모의 부탁으로 일부러 독일까지 오셨습니다. 제 어머님도 불교신자시구요. 묘비에 적힌 ‘처염상정’이라는 글귀는 설정스님께서 정하신 것인데 글씨도 스님께서 직접 쓰신 것입니다.”

윤이상 선생은 불교나 기독교 관련 작품을 두루 남겼다. 한 예로 1965년에 첫 공연을 한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는 불교를 주제로 한 것이다. 윤정 선생에 따르면, 윤이상 선생은 종교를 초월한 분으로 특정종교를 갖고 있진 않았다고 했다. 윤 선생은 생전에 비록 불교에 귀의하지는 않았지만 묘비의 ‘처염상정’ 네 글자로 사후에 부처님 품에 안겨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내 궁금증이 오늘로 비로소 풀렸다.

(* 사진은 전부 정범구 대사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혀둡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정범구 대사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정 대사께서 윤 선생 묘소 이장 계획을 언급한 것을 발견했다. 정 대사는 윤 선생 묘소 이장을 희망하는 한 페친의 글에 단 댓글에서 “유가족과 통영시가 통영으로의 이장을 원하고 있어 관련 절차가 진행중입니다.”라고 밝혔다. 나는 즉시 윤정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이런 내용을 알려드렸다. 윤 선생님은 “전 그저 조심스럽다”고 하셨다.

이제는 묘소 이장 공개를 승낙하신 걸로 보고 어제 나눈 대화를 몇 자 부기해두기로 한다.

생전의 윤이상 선생 모습

윤정 선생에 따르면, 정 대사 얘기처럼 가족과 통영시가 묘소 이장을 원하고 있어 조만간 통영으로 묘소를 이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무부처인 외교부, 통영시와는 협의가 이미 끝났고, 2월 중에 통영시 공무원이 이 건으로 독일 출장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3~4월경에는 윤 선생님도 독일 방문을 추진 중이라고.

윤이상 선생이 묻힌 곳은 독일의 저명인사들이 묻힌 명예의 전당으로, 윤 선생은 생전에 자신이 묻히기로 한 곳을 알고 계셨으나 한 번도 직접 가 보시진 않으셨다고 한다. 비록 좋은 장소에 묻히긴 했으나 외국 땅이다. 윤정 선생은 부친 묘소 이장은 “마지막 숙제”라고 말했다.

1995년 11월 3일 독일서 돌아가신 윤이상 선생은 생전에 꼭 고국에 묻히길 바랐다고 한다. 윤 선생의 고향 친구인 모 시인이 생전에 윤 선생에게 통영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늘 파도소리가 들리는 좋은 장소를 하나 찾아놨다고 하자 윤 선생은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한다. 이제 머잖아 그 꿈이 이뤄질 모양이다.

한편 윤이상 선생 묘소 이장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독일정부와 원만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데 이 점은 크게 어려움이 없는 걸로 보인다. 다만, 독일 교민들과 윤이상 선생을 사랑하는 많은 현지인들의 ‘섭섭함’이 클 것이다. 이에 대해 윤정 선생은 “묘소는 이장하되 그 자리에 기념표석을 하나 세워두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지난해 윤이상 선생 탄신 100주년을 맞아 통영 윤이상기념관 메모리홀에서 기념음악회를 열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윤 선생을 기리는 국제음악제의 명칭은 ‘윤이상 국제음악제’가 아니라 ‘통영 국제음악제’로 돼 있다. 윤 선생의 묘소 이장을 계기로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이 고향인 통영에서 부활하기를 기대해본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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