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CMS후원
2018.10.16 00:23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세계  |  미디어  |  칼럼  |  서팡게시판  |  여행게시판
 
칼럼홈 > 정운현

‘민족대표 33인’ 백용성 스님 죽림정사 방문기
정운현 | 2017-11-24 12:52: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기자 출신 글쟁이 네 사람.

2015년 <민주당 60년사> 편찬 당시 집필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뭉쳤다. 사진 왼쪽부터 필자(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전 서울신문 주필), 김진배 전 민주당 의원(전 경향.동아 정치부장),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1정3김’ 가운데 ‘3김’은 각자 김대중 책을, 필자는 박정희 책을 썼다. (그런 인연으로 필자는 민주당 60년사 가운데 박정희 18년을 맡아서 썼다)

또 ‘3김’은 호남 출신, 필자는 영남 출신. 김진배 전 의원은 1934년, 김삼웅 전 관장은 1943년, 김택근 선배는 1955년, 1959년생인 필자가 제일 막내다.

전북 부안 출신의 김 전 의원의 초청으로 부안 나들이를 왔다. 개암사, 내소사를 구경하고 채석강 옆에 숙소를 잡았다. 모처럼 세상사를 잊고 자연의 품에 안기다.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서, 2017.11.17


부안 매창공원에서

 
매창은 부안을 상징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본명은 이향금(李香今),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호이다. 매창은 시에 능한 기생으로 정인으로 삼았던 유희경(劉希慶)과의 사랑으로 유명하다. 현재 60여 수의 작품이 전해오고 있으며 부안읍내에 그를 기리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에는 ‘이화우’ 등 그의 작품 몇과 허균, 이병기 등이 그를 기린 글이 돌에 새겨져 있다. 부안에 오면 매창 묘소에 술 한 잔 치고 갈 일이다..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ㅡ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며 쓴 시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제 애가 끊겨라

ㅡ 유희경이 매창에게 보낸 답시

전북 부안읍내에 있는 매창공원

매창의 무덤 앞에서

매창의 대표작 ‘이화우’

매창의 작품 ‘취하신 님께’

허균이 지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매창의 정인 유희경이 지은 ‘매창을 생각하며’


‘민족대표 33인’ 백용성 스님 죽림정사 방문기

부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전북 장수로 잡았다. 귀경길의 길목이기도 했지만, 김진배 전 의원이 ‘꼭 들러야할 곳이 한 군데 있다’고 해서 찾은 곳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 소재 죽림정사. 이곳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백용성(白龍城·1864~1940)의 탄생 성지이기도 하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인 김택근 선배(전 경향신문 논설위원)는 일전에 성철 스님의 평전을 출간한데 이어 현재 용성 스님의 평전을 집필중이어서 더욱 뜻 깊었다. (나는 어릴 적 집안에서 용성 스님에 대해 자주 들어서 성함이 낯익다. 수원 백씨인 내 셋째 숙모님의 큰아버지께서 용성스님이라고 들었다)

백용성 스님

1919년 ‘기미 독립선언서’ 말미에는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연명으로 기록돼 있다. 33인의 지도자이자 천도교 대표인 의암 손병희 선생이 제일 첫머리에 올라 있고, 이어 길선주(기독교 감리회 대표), 이필주(개신교 대표), 백용성(불교 대표) 순이며, 이하 김완규, 김병조...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등 스물아홉 분은 가나다순이다. 33인 가운데 불교계 인사로는 흔히 독립선언서 말미의 ‘공약 3장’을 쓰신 만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불교계 대표는 백용성 스님이다.

용성 스님은 1864년(고종 4년) 이곳 죽림리에서 태어났다. 스님의 생가 뒤로 대나무 숲이 울창했는데 동네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듯하다. 16세 되던 해인 1879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1910년 한일병탄을 계기로 민족문제에 발 벗고 나서셨다. 만해와 함께 불교계 대표로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이 일로 1년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3월 1일 당일, 민족대표 33인이 종로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나자 용성 스님은 참석자들의 겉옷과 신발을 감추라고 하고는 일경에 신고토록 하였다. 독립선언서 발표가 능사가 아니라 전부 잡혀가 ‘문제’가 돼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 터였다.

용성 스님이 1962년에 정부로부터 받은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

형무소 수감 시절 33인 가운데 기독교계 인사들은 틈나는 대로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읽곤 했다. 그런데 불경은 전부 한자여서 아무나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이를 두고 용성 스님은 “감옥에 가힌 것은 내가 아니라 불경이 갇혔다”고 하였다. 이때의 경험을 살려 용성 스님은 출옥 후 역경(譯經) 사업에 진력하였다. 또 불교 대중화를 위해 ‘찬불가’를 만들고 손수 풍금을 치며 불자들에게 찬불가를 가르치기도 했다. 아울러 사원경제의 자립화를 위해 ‘선농(禪農)일치’를 주장하며 경남 함양 백운산과 북간도에 농장을 만들어 손수 농사를 짓기도 했다. 여기서 생산된 수확물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사리는 대개 스님이 열반한 후에 수습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용성 스님의 경우 생전에 치아에서 사리가 나왔는데 현재 해인사 용탑전에 안치돼 있다. 죽림정사 경내에는 생가를 비롯해 대웅전, 교육관, 용성 스님 기념관 등이 있다. 기념관에는 스님이 생전에 쓰시던 각종 용품을 비롯해 경전, 책자 등이 다수 전시돼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스님의 입상(立像)이 관람객을 반기는 데 그 오른쪽에 자그마한 풍금이 하나 놓여 있다.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스님이 불자들에게 찬불가를 가르칠 때 직접 사용했던 풍금이라고 했다. 용성 스님은 승려이자 민족지사요, 사상가요,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장수를 지나는 길이면 죽림정사를 꼭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용성 스님이 번역한 화엄경

용성 스님 생가 앞에서. 오른쪽부터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진배 전 의원, 필자

용성기념관 앞에서 기념촬영

용성기념관 입구에 있는 풍금과 부조상. 이 풍금이 용성 스님이 찬불가를 지어 보급하면서 손수 사용하신 풍금이라고 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95 









      



모바일 기기에서도 댓글 작성이 가능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현재 아이폰 기기까지 테스트 완료하였습니다.)


닉네임  비밀번호  534709  (스팸등록방지:빨간숫자만입력)

                                                 
민바행 (민족문제연구소바로세우기...
                                                 
토사구팽 확실 김성태동지의 必死 ...
                                                 
자녀를 착하기만 한 사람으로 키우...
                                                 
6.12 조미회담과 6.13 선거를 예측...
                                                 
왜 당신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시나...
                                                 
공기업 적자, 정치인-자본-관료의 ...
                                                 
美 국무부, 3차 남북정상회담에 “...
                                                 
한반도에서 유엔 헌장 정신을 구현...
                                                 
천안함 ‘좌초’에 대하여 ③
                                                 
대한항공의 성장, ‘관피아’의 전...
                                                 
PD수첩에 나타난 명성교회, ‘나사...
                                                 
문비어천가’ 검증하려다 미담 기...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김자동 회장의 ‘회고록’을 받아...
                                                 
전성기
                                                 
[이정랑의 고전소통] 적폐통치(積...
                                                 
유권자, 즉 국민이 ‘단일화’를 ...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기자회견...
                                                 
“근혜를 보면 그 아부지를 생각한...
                                                 
[오영수 시] 3.1절, 제헌절, 광복...
4887 천안함 ‘좌초’에 대하여 ①
3955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을 찾습...
3109 천안함 ‘1번 어뢰’ 에 감긴 철사...
2725 손석희 앵커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
2656 기자들이 비웃었던 문재인 대통령...
1973 친문계, 김진표 대표-전해철 사무...
1874 친위쿠데타 의심됐던 소름 돋는 그...
1807 천안함 ‘좌초’에 대하여 ②
1711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시킬 수도 ...
1557 기무사 내란 모의 수사 상황정리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3 진미파라곤930호 (주)민진미디어 | 발행.편집:신상철 | 등록번호: 서울 아01961 | 발행일: 2012.02.15 |
이메일: poweroftruth@daum.net | 사업자번호: 107-87-60009 | 대표전화: 02-761-1678 | 팩스: 02-6442-0472 | 통신판매: 2012-서울영등포-0188호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고/사업제휴문의 | 기사제보 | 칼럼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