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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북한 핵 긴장이라는 환상 - 상 ②
핵 확산을 허용한 것은 누구인가
김종익 | 2017-09-21 12:49:5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 글은 일본 월간 잡지 <세카이> 7, 8월호에 게재된 글이다. 필자는 다니구치 나가요谷口長世이다. 다니구치는 1949년생으로, 유럽을 거점으로 국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벨기에 국제기자연맹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브뤼셀에 거주하고 있다. 저서로는 <NATO - 변모하는 지역 안전 보장>, <사이버 시대의 전쟁> 등이 있다.


핵무기와 초원심분리기 – 엄청난 기기·부품·소재·기술의 집대성

파키스탄이 손에 넣고자 했던 것은 초원심분리법에 의한 핵무기로 사용 가능한 고농축 우라늄을 얻는 방법이었다. “초원심분리법 농축 우라늄 추출에는 초고속 회전에 의한 마모를 최대한 줄이는 플랜트 설계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칸이 근무한 FDO는 이 기술들의 보고였습니다.”(네덜란드 핵무기 전문가)

그런데 핵무기 제조에는, 적어도 핵폭탄 제조, 그리고 그것을 쏘아올리고 운반하는 수단(미사일 등)이 필요하다. 실제는 몇 십만, 몇 백만 개라는 부품과 특수한 소재, 특별한 지식과 첨단 기술, 그것을 관장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미사일 내부를 들여다보면, 집적회로 등이 잔뜩 들어 있는 민간 첨단 기기와 한눈에 구별할 수 없다. 따라서 핵폭탄 제조 비밀을 훔쳐 내더라도, 그것으로 바로 핵무기를 제조할 수는 없다. 제조를 위한 방대한 그리고 특수한 부품·소재·기기의 조달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전문 기술자 양성도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국제 사회의 눈을 속이고 몰래, 오랜 기간, 국경을 넘어서 상당량 수출해야만 한다. 칸과 슬레보스는 이인삼각으로, 이 암시장의 조달 네트워크를 착착 쌓아 올려 갔다. 파키스탄 정부의 윤택한 재정이 후원했다. 파키스탄이 자가 핵무기 보유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카슈미르 분쟁의 불씨를 품은 인접국 인도의 핵무기에 대한 공포, 적개심, 대항 의식 때문이었다.


‘핵 암시장’ 형성과 문경지우 – 애국자에서 핵 상인으로

칸과 슬레보스에 의한 핵무기 제조 암거래 조달망 만들기는, 1972년 칸이 FDO에 입사한 당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칸은, 당시 해군에서 각종 무기 수리·관리 유지 부문에 근무하고 있던 슬레보스와 우정을 초월해 암거래 장사 제휴를 돈독히 했다. 1974년에 슬레보스는 앞에서 말했듯이 해군 시절의 거래처였던 EMW社에 낙하산 입사를 하고, 고속증식로와 칸이 빈번히 다니는 UCN의 일을 담당했다. 칸은 1975년 세모에 홀연, 초원심분리기의 설계도 청사진을 비롯한 극비 정보 여러 가지와 함께 파키스탄으로 자취를 감추고, 다음 해인 1976년, 핵무기 제조 위장체가 되는 국책기관(나중에 KRL)을 주재하게 되었다. 슬레보스는 같은 해, 자신의 관리 범위를 넘는 의혹을 사는 행동을 반복한 잘못을 추궁당해 EMW社를 퇴사한 다음, 첫 파키스탄 여행을 한다. 뜻밖에도 같은 해, 칸이 핵 기밀 정보를 훔쳐 낸 전 근무처 FDO의 퀴스 판매 부장도 파키스탄의 제1회 초대 여행을 했다. 이 부장은 1977년, 1979년에도 파키스탄 초대 여행을 했다. 1979년, FDO가 파키스탄에서 유로 환산으로 60만 유로 상당의 진공 측정 장치 구매를 수주한 일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1980년 네덜란드 국회 칸 조사위원회 보고와 정보 공개된 극비 문서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 칸이 FDO에서 일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칸과 슬레보스는 네덜란드 수출 관리 당국과 첩보기관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파키스탄에서 돌아온 슬레보스는, 1978년 1월에 유한회사 ‘슬레보스 리서치’를 설립하고, 맹렬히 핵무기 제조를 위한 부품·기기·소재 조달의 블로커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9년, 네덜란드 스히폴Schiphol 공항 세관에 원심분리기의 마레이징maraging 4) 동관 300개를 압류당했다. 이때 조사에서 슬레보스는 1976년부터 합계 6,200개의 같은 동관을 파키스탄을 위해 수출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이것은 거의 일부이고, 후년의 조사에서 슬레보스는 파키스탄의 ‘칸연구소’와 그 위장 단체에 평균 주1회 페이스로 핵무기 제조에 관련된 기기·부품·물자를 발송했다고 한다.

4) 보통 ‘maraging鋼’으로 표기되며, 철, 니켈, 코발트, 몰리브데넘 따위를 일정 비율로 섞어 만든 매우 굳은 강철. 고온에서도 단단하며 인성靭性이 풍부해 가공하기 쉬워 항공기, 제트 엔진, 초고압 화학 장치 따위의 부품을 만드는 데 쓴다.

칸의 파키스탄 귀국 후 인생은 순풍에 돛을 단 형국이었다. 1978년 4월에는, 네덜란드에서 훔쳐 낸 설계도와 정보를 기초로, 파키스탄의 카후타에 완성한 P-1형 원심분리기로 최초의 우라늄 농축을 성공했다. 1981년에는 동 시설에서 상당량의 우라늄 농축 달성을 발표하고, 그 공으로 그가 주재하는 핵무기 개발 중심기관이 ‘칸연구실험실Khan Research Laboratory’(KRL)로 명칭을 바꾸고, 명실상부한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의 중심이 되었다. 동시에 그것은, 국제 규모의 ‘핵 암거래 시장’ 주재자로서 첫걸음을 내딛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중반, 이것도 칸이 훔쳐 낸 설계도를 기초로 제2세대 원심분리기 P-2형이 카후타에서 가동을 시작했다.

1983년에 파키스탄을 위한 핵 관련 기기 부정 수출 혐의로 슬레보스가 처음 체포됨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칸에 대한 궐석 재판이 행해져 금고 4년이라는 판결이 내렸다. 그러나 절차 불비로 두 사람 모두 무죄가 되고 말았다. 놀라운 일로 칸은 몇 번이나 네덜란드에 몰래 되돌아와 있었던 듯하다. 칸은, 1988년 12월 24일, 벨기에 국경 부근에서 그의 처갓집 근처를 슬레보스가 운전하는 자가용차로 주행하던 중, 경관의 직무 질문을 받고 신병이 구속되어 파키스탄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정보기관에서는 별도의 처리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칸과 슬레보스는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아프리카 국가들에 네트워크를 확대해 갔다. 이른바 ‘핵 암거래 시장’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2004년 2월 이후, 언론 보도·책·논문이 넘쳐나고, 이것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일본의 경우 최대 관심은 칸과 북한의 커넥션이다. 2002년 11월 25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생어David Sanger 기자의 「북한과 파키스탄의 원폭 관계 우라늄 기술과 미사일 부품의 구상 거래를 미국은 밝혀냈다」라는 제목을 붙인 기사를 게재하고, 같은 해 7월에 파키스탄 군용 수송기 C-130이 북한 영내 활주로에 착륙하고, 북한제 탄도미사일 부품을 적재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미 정찰 위성이 촬영했다고 보도했다. 또 1990년대에 북한이 핵무기 제조 노하우를 파키스탄에서 입수했다는 칸 스스로의 고백도 알려졌다. 그러나 국제 사회가 일제히 깨닫는 것은 2003년 세모를 기다려야만 했다.


‘운명의 시간’ 2003년 10월

2003년 여름 막바지, 미국 스파이 위성은 수에즈 운하를 항행 중인 독일 선적 「BBC 차이나」호를 계속 감시·추적하고 있었다. 이 배가 지중해를 지나 목적지 리비아로 향하는 도중, 이탈리아에 기항하자, 연락을 받고 대기하던 이탈리아 경찰이 배에 올라 검사를 행하고, 선적된 화물에서 5개의 컨테이너에 수납된 우라늄 농축 관련 기기 약 1,000점을 압수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마주한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 대령은 같은 해 말, 리비아 핵무기 제조 계획 포기를 표명하고, 호기롭게 파키스탄의 핵무기 확산 관여 실태까지 폭로했다. 칸 박사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핵 암거래 시장’의 실태가 차례로 폭로되고, 국제 사회의 비난을 집중적으로 받는 처지에 놓인 파키스탄은 다음 해인 2004년 1월, 형식상 칸 박사를 체포했다. 그리고 2월 4일에 칸 박사를 TV로 사죄하게 하고, 무살라프 대통령이 다음 날, 박사에게 사면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도모했다. 

그러나 박사의 사죄는 파키스탄 우르두어가 아닌 영문을 낭독하는 형식을 취했다. 국민에 대한 사죄 형식을 위장한 외국용 ‘마무리’인 국책 메시지이다. ‘핵 암거래 시장’은 칸 박사의 독단과 사리사욕에 바탕을 둔 것으로, 정부와 군은 관계가 없다고 하는, 말하자면 ‘도마뱀 꼬리 자르기’였다. 이것에 불만이었던 칸은 2011년에, 북한에서 지급한 핵무기 관련 기술 공여 사례로 파키스탄 군 간부에게 300만 달러를 중개하고, 당시 무샤라프 장군(나중에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기술 공여를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분명히 군용 수송기 C-130 운용은 칸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고, ‘핵 암거래 시장’은 파키스탄의 국책 사업이었다고 보면 틀림없다. 또 불필요하게 된 구형 초원심분리기를 “핵무기 제조에 사용할 수 있다”고 명기하고, 매물로 내놓은 광고를, 파키스탄 정부가 국제 시장에 제시한 기록도 남아 있다.

가장 큰 의문은, 왜 2003년 10월이 국제 사회가 깨닫는 적기로 선택되었을까, 라는 점이다. 이 발각을 계기로 국제 여론이 일어나고, 가공할 ‘핵 암거래 시장’의 존재를 폭로하는 보도가 넘쳤다. ‘2003년 10월’의 적기 선택 이유를 어느 핵무기 확산 문제 전문가는, “중국과의 관계를 최우선하는 파키스탄에 대해 미국이 핵무기 확산이라는 국책 비즈니스의 꼼짝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고, 협박한 것은 아닐까”라고 분석한다. 파키스탄은 중국과의 전투기 공동 개발, 중국에 의한 파키스탄 항만 정비 원조에 대한 중국의 이들 항구에 대한 대폭적인 사용권 공여 등 급속한 접근이 두드러지고, 미국이 여기에 쐐기를 박는다는 견해이다. 나는 ‘2003년 가을’이라는 적기는, ‘북한’ ‘동북아시아’의 긴장 확대라는 복선은 아닐까 의심한다.


부정 수출은 왜 오랜 세월 방치되었을까 - 네덜란드 전 수상 vs CIA

또 한 가지 의문은 부정 수출이 왜 이렇게까지 오랜 세월 방치되었을까 라는 점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칸과 슬레보스에 대한 네덜란드 당국의 감시 활동은 시작되었다. 그것이 왜 질질 끌며 2003년까지 단속하지 않아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북한, 이란, 리비아 등으로 핵무기 기술의 확산을 허용하고 만 것일까―.

이 의문에는 완벽하게 대립하는 견해가 존재한다. 네덜란드의 루베루스 전 수상은, 1973~1977년 네덜란드 경제 장관 당시에 칸에 관한 일련의 핵 제조 기술 스파이 행위 의혹을 미국 측에 통고했더니, 계속 감시·보고해 주기 바라지만, 칸은 체포는 하지 말고 일부러 자유롭게 놔두라는 미국 측의 지시가 돌아왔다고 증언한다. 그에 따르면, 그런 일이 두 번 있었다. 전 수상은 서로 다른 시기에 네덜란드공공국제방송, NHK, 네덜란드라디오1국 등 각각의 인터뷰에서 대체로 같은 내용을 증언했다. 스파이 영화를 현실에 재현하는 충격적인 고백이다. 그러나 CIA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파키스탄의 핵 확산 문제를 담당한 Richard Barlow는, 미국 측은 칸의 행동에 강한 의혹을 가지고, 신속히 적절한 행동을 취하도록 거듭 네덜란드 관계 당국에 요청했지만 대응은 정말 굼뜨고, 비협조적이었다고 정면으로 대립한다.

네덜란드 전 수상일까, 베테랑 전 CIA 전문 관료일까. 어느 쪽이 진실일까. 지금도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네덜란드 두 나라의 해당 부서가 오랜 세월, 칸과 슬레보스를 중심으로 한 부정 무역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보 공개 청구로 밝혀진 수많은 네덜란드 정부의 극비문서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사실을 알면서 두 나라는 유효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칸 박사가 “적어도 빈 라덴급의 위험인물”로 대대적으로 주요 언론에 부각된 것은 2004년 초반이었다. 마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처음 이 ‘핵 암거래 시장’의 주역이 발견된 듯이 부시 미국 대통령(당시)과 유엔 관련자가 경악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칸 박사의 핵무기 스파이 행위는 그보다 20년 이상 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면 1979년 12월 9일자, 영국 일요판 『옵서버』에는 “어떻게 칸 박사는 이슬람을 위해 폭탄을 훔쳤을까”라는 커다란 기사가 실려 있다. 1980년에 네덜란드 국회는 칸 박사의 핵무기 제조에 관한 스파이 행위에 관한 조사위원회 보고서까지 발표한다. 그런데 왜 국제 사회는 칸 박사와 슬레보스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고, 결과적으로 핵무기 확산 위험성을 증폭시켜 간 것일까.

실은, 왜 오랜 세월, 핵무기 제조에 관한 부정 무역이 방치되었던 걸까, 라는 물음은, ‘핵 암거래 시장’의 존재 발각이 왜 2003년 10월을 계기로 일어난 것일까, 라는 물음과 표리일체인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의문은, 점점 증폭될 뿐이고 일본 국민의 공포감을 심화시키는 북한 핵 문제의 배경을 독해하는 귀중한 힌트이다. 칸 자신이 이른 시기부터 네덜란드 첩보기관과 정기적으로 접촉했다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이야기한다. 수수께끼 풀이는 다음으로 양보하고, 이번 회는 지난 해, 백혈병과의 장렬한 투쟁 끝에 서거한 이집트인 노련한 기자의 임종 전 칸 박사에 관한 이상한 고백을 적고 끝맺고자 한다.


죽음의 병상에서 한 고백 - 부추겨지는 공포를 제지하는 겸허함

이집트인 아흐메드 이데리스 박사는 중동 통신, 영국방송협회(BBC) 국제방송(아랍어)의 기자로 파키스탄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보도에 종사하고, 브뤼셀에서 일하는 동안, 백혈병에 걸려 쓰러졌다. 몇 년에 걸친 투병 말기에는, 문안하는 내내 코와 입에서 자주 피가 나왔지만 계속 이야기하려고 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마침내 임종이 아주 가까이 임박했을 때,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아흐메드 박사를 방문하자, 그는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며,
“자네는 칸 박사의 핵무기 문제에 관심이 있었지. 실은 칸 부부와는 파키스탄 특파원 시절에 가족끼리 친교가 있었어.”라며, 헐떡이듯이 말을 꺼냈다. 15년을 넘는 교제에서 한 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었던 말이다. 놀란 내가, 그는 초원심분리기의 비밀을 훔치고…라며 말하기 시작하는 것을 제지하고,
“거짓말이야, 그 이야기는, 초원심분리기에 의한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무기를 만든 이야기는…. 진실은 구소련에서 흘러온 거야. 나는 파키스탄이 입수한 납 케이스에 든 현물을, 이 눈으로 봤기에….”라고 단숨에 말하고, 고통스러운 듯이 침묵했다. 확실히 소련 연방 붕괴에 동반하는 핵 유출 공포는 존재했다. 어느덧 잊혔지만…. 그래서 칸 부부와의 친교를 드러낼 증거는 없는가, 라고 묻자 곁의 아내에게 뭔가 일렀다. 다음 문병 때 건네준 것은 낡은 자선charity 활동에 관한 소책자로, 주재자인 칸 부부와 이데리스 부인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런 건 아무 증거도 안 된다”고 많은 사람은 웃을 것이다. 이데리스 박사와 다음 대면은 병원 지하의 영안실이었다. 평온한 표정으로 새하얀 시트에 싸여 있었다. 그의 임종 고백은 세계의 상식과 완전히 다르고, 따라서 거짓말로 처리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말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믿고 의심하지 않는 국제 사회의 상식이, 언제나 진실한 것일까. 나로서는 다양한 정보와 사물에 대한 다른 견해에 항상 겸허해야 한다고 하는 것밖에 모른다.<계속>

<세카이 7월호>

북한 핵 긴장이라는 환상 - 상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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