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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전쟁 종전선언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 ③
7.27 정전, 소련이 제안하고 미중이 동의
김갑수 | 2018-06-07 11:35: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6.12 싱가포르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코리아 전쟁의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미 대통령 트럼프의 입에서 나올 정도라면, 이제 종전선언은 시간문제라고 보아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미 3자가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코리아전쟁 종전은 남북미 3자 외에 반드시 중국이 참여해야 온전해집니다.

또한 ‘남한 정부는 1953. 7.27 휴전협정에 조인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종전선언 참여의 자격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관점입니다. 종전선언은 실제 전쟁에 참여한 주체가 하면 되는 겁니다. 코리아 전쟁의 참여 주체는 명백히 남북미중 4자였습니다.

종전선언을 목전에 두고 우리는 이것이 어떤 역사적 인과관계를 갖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선언이 가지는 중차대한 역사적 의의를 실감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1953년 7.27 휴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겠습니다. 다만 기술 편의상 논의의 출발을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부터로 하겠습니다. 3편에 나누어 게재 합니다- 필자 주

▲사진출처: 연합뉴스

7.27 정전, 소련이 제안하고 미중이 동의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이제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손해를 보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명분을 찾는 일도 실익 못지않게 중요했다. 미군은 동부지역에서 전선을 최대한 북상시키는 대신 개성 등의 서부전선을 방기했다.

중국군도 금강 전선 이하로 밀고 내려가지 않을 때부터 이미 현상 유지의 방어 전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민군 지도부는 남하하자고 주장했지만 중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중국은 밀고 내려갈 의사도 없었을뿐더러 보급에도 문제가 있었다.

휴(정)전을 정식으로 제안한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전쟁 발발 1년에서 이틀이 모자라는 1951년 6월 23일, 공식적으로 정전을 제안했으며 중국과 조선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정전을 반대한 것은 이승만 정권과 선동적인 한국 신문들뿐이었다.

1951년 7월 8일 협상 절차 문제가 합의되고, 이틀 뒤부터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갔다. 이처럼 사실 전쟁은 1951년 7월에 종료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양측은 사사건건 의견 대립을 표출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미군의 폭격기들은 부단히 북측 상공에 출몰했다.

협상의 주도권을 북이 쥐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개성을 북에게 내 준 미국은 협상 장소를 조금 아래로 내려 널문리에 있는 한식 음식점을 선택했다. 그들은 그 한식집을 널문리 가게라고 불렀다. 그리고 널문리 가게를 한문으로 바꿔 표기한 것이 판문점(板門店)이었다.

동부전선에서는 소모적인 고지 쟁탈전이 계속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백마고지 전투였다. 열두 번이나 주인이 교체된 이 고지 전투에서 전사자는 양쪽 합쳐 수천 명에 달했다. 민둥산 하나를 얻으려고 치른 대가였다. 이 산에는 25만 발 이상의 폭탄이 터졌다. 미군 항공기의 출격 횟수도 750차례를 넘었다.

‘백마’는 원래 산이나 고지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대 이름과도 무관했다. 전투가 끝나고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게 된 그 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산 전체가 하얗게 변색되어 버려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백마고지 말고도 산봉우리에 붙은 이름들은 다양했다. 김일성고지, 모택동고지. 독수리고지, 아이스크림고지.... 산봉우리 하나 당 평균 700명 정도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고지에 붙여진 다양한 이름들에는 무모한 땅 따먹기 싸움에 대한 허탈과 냉소의 의미도 들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정전협정은 끊임없이 불거지는 문제점들로 난항을 겪고 있었다. 포로 송환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미국은 물리적으로 승리하지 못한 전쟁을 심리적으로나마 승리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포로 송환 문제를 포로 당사자들의 자유의사에 맡기자는 방식이었다. 만약 인민군이나 중국군 포로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면,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일뿐더러 전쟁에 개입한 명분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제안을 가장 난감하게 여긴 측은 중국이었다. 자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하는 중국군 병사는 1만 4,700명에 달했다. 이것은 이 전쟁에 파견된 중국군 중 많은 수가 중국 공산주의 혁명 전 장개석의 국민당군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 본토보다는 대만으로 가기를 원했다.

미국은 북측 전력의 핵심 요충원인 수풍 발전소를 맹폭했다, 이것은 협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욱 가혹한 일을 당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북한의 권력 내부에 동요가 나타났다. 결국 북한은 온건파가 힘을 갖게 되어 미군의 협상안을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사실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할 이유는 중국에 가장 많았다. 중국은 혁명에 성공한 지 불과 1년 만에 한국전에 참전하느라 후속 혁명작업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전쟁을 마무리하고 중단된 사회개혁작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만 문제까지 걸려 있었다.


종전선언, 우리 민족 번영 웅비의 출발점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자 소련의 권력층에서는 냉전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이젠하워는 군인 출신이지만 한국전의 조속한 종전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했었다. 그러자 대한민국의 이승만만 유일하게 정전에 반대하는 꼴이 되었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을 설득했고 이승만은 정전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우여곡절의 2년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미군 대표 해리슨과 북측 대표 남일은 서로 인사 한 마디 교환하지 않은 채 협정 조인석에 앉았다. 그로부터 불과 12분 후 서명을 마친 해리슨은 헬기를 타고 문산리로 향했으며, 남일은 지프를 타고 개성 방향으로 갔다. 이로써 3년 1개월 간의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참전국 서명에서 이승만만 끝내 정전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

정전 후 전쟁 당사국들은 어느 누구도 자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 모두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 했다. 이승만 정권은 북한의 불법남침과 적화야욕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했다고 ‘주장’ 했다. 김일성 정권은 미제와 이승만 도당의 침략을 막아내고 사회주의 조국을 성공적으로 보위했다고 ‘주장’ 했다.

모택동 정권은 한반도 전체를 수중에 넣어 중국에 대한 전초기지를 세우려는 미국의 음모를 분쇄했다고 ‘주장’ 했다. 미국 정부는 청사진 없이 북진을 추진한 맥아더의 전략적 부재에 대해서는 실패를 인정했지만, 포로 송환 과정에서 명분상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 했다.

하지만 세상의 누구도 이들 네 나라 중 어느 하나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의 백성들이 입은 피해는 처절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의 고통스러운 상처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았다. 남과 북 백성들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패자였다.

바야흐로 종전선언이 임박한 것 같다. 빠르면 6.12 싱가포르 회담을 전후해 이루질 수도 있다. 코리아전쟁 종전선언은 2차대전 이후 조성된 냉전체제를 완전히 끝내는 대미(大尾)로 장식될 것이다. 우리가 확인했듯이 중국은 코리아전쟁의 주체 중 하나였다. 그러니 종전선언은 남북미중 4자가 하는 것이 온당하고 완결적이다. 미국은 코리아전쟁 당시처럼 유일 초강대국이 아니다. 그들은 강대국 중의 하나로 내려앉도록 되어 있다.

코리아전쟁의 종전선언은 대결에서 화해로, 분단에서 통일로 역전되는 반환점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짐으로써 삼천리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외세의 군사적 침탈도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 민족은 외세의 침탈이 없을 때에는 여지없이 번영했다. 전쟁이 없어야 번영하는 평화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그리하여 종전선언은 우리 민족의 번영과 웅비를 기약하는 일대 사변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끝>


코리아전쟁 종선선언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 ①
코리아전쟁 종선선언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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