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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이야기 - ②
<논어>에는 가장 ‘유학’이 적다
김갑수 | 2018-05-15 08:39: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논어>에는 가장 ‘유학’이 적다

일부일처제를 아예 무시해버린 듯한 공자 3대의 이혼담은 <예기>에 있는 기록이다. 물론 <예기>에는 공자를 신성시하는 일화가 더 많다. <예기>뿐 아니라 대부분의 저작물에서 공자는 이따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사마천의 공자세가에도 실감나는 인간 공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저작물의 필자들은 현실 감각보다는 공자를 신성시하여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우선시했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어떤 인물을 현실 이상의 의미로 격상시켜야만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풍토는 인류 역사에 아주 광범위하게 퍼진 고질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인식론적인 반성을 해야 한다.

그런데 <논어>는 다르다. 논어에는 공자의 삶이 생동감 있게 나타난다. 다른 어떤 책보다도 <논어>에는 과장은 물론 윤색도 거의 없다. 요컨대 <논어>는 공자의 삶을 전달하는 가장 정직한 텍스트인 것이다. 여기에 <논어>의 각별한 의의가 있다.

물론 <논어>는 공자 자신이 집필한 것도 아니며 공자와 같은 시간대에 살았던 제자가 편찬한 것도 아니다. <논어>는 공자가 죽은 후 오랜 세월에 걸쳐 공자의 마니아들이 설파한 파편들을 모아 묶은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 역시 조작성이 없다는 단언을 내릴 근거는 없다.

하지만 <논어>는 다른 유교적 저작물과는 확연히 변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아니러니 하게도 <논어>에는 유학의 흔적이 가장 적다. <논어>는 솔직하고 개방적이고 비권위적이다. 정작 <논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권위는 물론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세속적 의미에서 공자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호사가들에게 <논어>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논어> 속의 공자는 다분히 인간적이다. <논어>에 담겨 있는 공자의 어록들에는 인간 공자의 희로애락이 생동한다. 이런 점에서 논어야말로 공자를 전달하는 가장 생동감 있는 기록이라는 것이다. 김용옥은 선언하다시피 말하고 있다. “논어는 인류문명사의 축복이다.”


공자, 사마천, 반고가 존경한 인물들

<논어>는 공자의 어록이다. 여기에는 서사적 내러티브가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논어>는 예수의 복음서와 다르다. 서사적 담론이라 할 수 있는 복음서와 비슷한 것은 사마천의 공자세가이다. 만약 사마천 같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면 공자에 관한 기록도 예수의 복음서들처럼 다수 현존했으리라는 가정을 해 볼 수도 있겠다.

논어는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각 편마다 독자적인 성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각 편의 제목들은 학이(學而), 술이(述而) 이인(里仁) 등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첫 문장의 처음 두 글자를 따서 붙인 제목이다. 제목이 아주 평이하고 자연스럽게 붙여진 것이다.

<논어>는 영향력 있는 어떤 저작물보다 덜 정교한 책이다. 학문이란 정밀성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지만 고전 텍스트의 경우 정밀도가 높을수록 조작의 가능성도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논어>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빛을 낸다. 그러므로 <논어>는 여전히 ‘우리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잡설일 뿐’이라는 김용옥의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잠시 논의의 방향을 바꾸어 공자가 흠모했던 인물 주공(周公)에 대해 알아본다. 중국의 역사에는 그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 몇을 든다면 한고조 유방이나 초패왕 항우나 진시황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보다도 더 평가가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있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상(商) 왕조(BC 16~11)의 마지막 임금 주(紂)이다. 이 나라는 원래 정통 이름이 상인데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周)나라 사람들이 상나라를 수도 이름인 은(殷)으로 격하시켜 은나라로 부른 것이다.

상의 마지막 임금 주(紂)는 그 유명한 고사성어 주지육림의 주인공 여인 달기를 데리고 논(?) 사람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의자왕의 삼천궁녀 이야기를 사실인 줄 믿었다. 그러나 역사에는 조작이 많음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망한 나라의 마지막 임금은 처절할 정도로 격하 조작된다.

이것은 흥한 나라의 첫 임금이 황당할 정도로 격상 조작되는 이치와 맥을 같이 한다. 분명히 상나라의 주 임금도 실제보다 나쁘게 기록되었으리라는 추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왜냐하면 망국의 마지막 왕은 언제나 음탕한 폭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음탕한 폭군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은 아주 긍정적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주를 ‘사리를 명료히 분변하는 자질을 타고나서 판단이 민첩하고 듣고 보는 것이 신속한 장사’라고 했다.

우리는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 죽은 백이와 숙제 이야기를 알고 있다. 백이와 숙제는 우리의 성삼문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백이와 숙제가 그토록 목숨을 버리며 지조를 지키려 한 임금이 바로 주였다. 백이와 숙제는 주를 정벌하러 가는 주(周) 무왕에게 인을 져버리면 안 된다고 말고삐를 잡고 하소연을 했다가 주 무왕이 끝내 자신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자 수양산 입산을 단행한 것이다.

아무튼 주(周) 무왕은 주(紂)를 정벌하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이때 만들어진 말이 ‘역성혁명’이라는 그럴듯한 어휘이다. 왕조를 뒤집는 데 피를 흘리지 않고 성(姓)만을 바꾸었다고 해서 역성혁명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말을 가장 요긴하게 이용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조선 건국 혁명 예찬가인 <용비어천가>에는 태조 이성계를 주 무왕에 비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해서 무왕은 주나라의 첫 임금이 되었다. 잠깐 논의의 초점을 바꿔 말하자면, 역사는 주 무왕에게 망한 상나라의 주(紂) 임금을 음탕한 폭군으로 회자하고 있다. 게다가 상나라는 유치하고 초라한 문화밖에는 없었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오늘날 발굴되고 있는 상나라의 갑골문이나 방대한 양의 청동 제기들은 이 까마득한 고대국의 문화가 얼마나 우아하고 섬세했는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망한 나라라고 해서 함부로 그 문화까지를 폄하, 매도해 버리는 우리의 작태가 고쳐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한국의 아저씨들은 조선을 잘 모른다. 특히 한국의 계몽주의 지식인이나 사회주의자들이나 기독교인의 일부는 근대에 망한 조선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시각을 곧잘 표출하곤 한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비단 이것은 나라에 관해서만이 아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낙백한 사람은 으레 폄하되고 영달한 사람은 기껏 상찬되는 풍조는 필경 ‘경박과 무지’ 때문이다.

다시 주 무왕으로 논의를 돌린다. 무왕은 분명 큰 용량의 인물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포용력이 있었다. 그는 상나라의 충신들을 우대했다. 이때 조선의 제후로 봉해진 기자도 망한 상나라의 충신이었다.

무왕에게는 단(旦)이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었다. 무왕은 동생 단을 노나라 제후에 봉했다. 그러나 단은 형의 역성혁명이 아직 불안하다고 여겨 자기 아들을 대신 임지로 보내고 자신은 남아 형을 보필한다. 형 무왕이 죽자 무왕의 아들 송(誦)이 왕위를 잇는데 그가 곧 성왕이다. 그러니 성왕은 단의 조카가 된다. 하지만 당시의 여론과 형세는 삼촌인 단을 왕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단은 끝까지 어린 조카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다하며 국정을 자문했다. 아마 모르긴 하지만 조카 단종의 권력을 찬탈하여 세조가 된 수양대군 같은 깡패 정치가는 단을 경원시했을 것이다.

주나라는 단의 자문과 섭정으로 초기의 문물제도가 완비된다. 요컨대 중국 최초의 정통왕조라 할 수 있는 주나라는 2대에 걸친 단의 노력으로 축성된 것이다. 이 단이 누구인가? 바로 공자가 그토록 흠모해 마지않았던 주공이다.

기전 90년에 나온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주공과 공자를 가장 존경한다고 토로했다. 또한 기후 90년에 저술된 <한서>의 작자 반고는 중국의 인물을 9등급으로 매겨 놓고 있는데, 신화적 성군인 요· 순임금은 2등급(上中)인데 비해 주공과 공자 두 사람만 1등급(上上)으로 매겨져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로 보아 공자는 자기 스스로 그토록 흠모했던 인물과 동격이 되었으니 그의 인생 성취는 실로 경이로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낭설

주나라의 제후국 중에 송(宋)이 있었다. 송은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에 있던 소국이다. 그런데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곡부는 상구현에서 서남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다. 중국 대륙의 광활함으로 볼 때 이 정도 거리면 거의 같은 고장이라고 보았는지 김용옥은 공자를 송의 후예라고 말한다.

물론 송은 바로 몰락하는데 이 몰락의 사유도 조금 특이하다. 당시 송의 통치자는 양공이었다. 그런데 양공은 매사에 인(仁)의 명분만을 추구하다가 나라를 말아먹었다. 그래서 생겨 난 풍자적인 말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다. 지나치게 대의명분만을 내세우거나 또는 불필요한 인정이나 동정을 베풀다가 오히려 낭패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공자는 노나라 사람이 되었지만 그 뿌리는 바로 송양지인의 나라 송에 있다. 이것은 이북 사람이 이남에 와서 살아도 여전히 이북 사람인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인의 명분은 가히 공자스럽기(?)는 하다.

당시 중국에서 바로 송(宋)의 지방색이 가장 뚜렷했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서에는 송인들을 자주 어리석은 사람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기실 그 어리석음이란 악질성이 아니라 비상식성의 어리석음이다. 다시 말해 당대 송인들은 순진하지만 곧잘 상식의 궤도를 일탈하는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조장(助長)이라는 단어는 ‘도울 조’ ‘기를 장’ 자를 쓰는데, 나쁜 일을 만들어 내고 부추길 때 사용하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지역감정 따위를 ‘조장’한다고 말한다. 원래 이 말은 <맹자>에 나오는 고사성어이다. 호연지기를 기르되 성급히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맹자가 한 말이다. 한 농부가 있었는데 새로 심은 모가 얼른 자라 주지 않자 손으로 일일이 잡아 뽑아 올린 것이다. 물론 그 모들은 얼마 후 모두 말라 죽었다.

한편 한비자는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말을 했다. 일하러 나가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은 토끼를 얻어 수입을 잡은 농부는 다음 날부터 일은 안 하고 나무 옆에서 한사코 토끼를 기다렸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한비자는 진시황 밑에서 법치를 주장한 이른바 법가인데, 그는 도덕과 명분만을 중시하는 성인 통치를 ‘수주대토’라고 비판했다. 도덕과 명분을 중시했던 요, 순, 탕, 문, 무, 주공 등과 아울러 공자, 맹자 같은 이들은 한비자가 보기에 답답한 위인들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의 정치사상을 ‘나무 그루터기에서 토끼를 기다리는 격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아무튼 조장이건 수주대토건 그 당사자들은 왠지 순진하기도 하고 코믹하기도 한 어리석은 인격체들이다. 그들은 비상식적일지언정 악질은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농부들이 모두 공자와 같은 송인들이다. 송의 전신 상나라의 문화가 찬란했듯이 당시 송인 중에는 천재적인 예인이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조장이나 수주대토 같은 말들은 주나라 문화권에서 자기들이 멸망시킨 지역의 사람들을 모멸하기 위해 지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상도 사람이 50년 이상이나 통치한 한국에서는 전라도 사람들을 모멸하는 갖가지 편견들이 ‘조장’되었다. 하지만 기실 전라도 사람들은 대체로 머리가 좋으며 유머러스하고 개방적이며 대가 약하다.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판소리나 남도 민요가 보여주듯이 그들은 예술적이다. 공자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으며 언어적 능력을 성취한 인물이다. 그는 당대 중국에서 우리의 전라도인과 비슷했던 송인의 후예였다.


자로(子路), <논어>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

자로는 공자의 제자이지만 실제로는 평생 반려가 돼 주었던 친구 같은 존재였다. 자로가 없었더라면 이른바 ‘공자학단’이라는 것도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당시 공자를 찾아와 제자 되기를 청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뿌리 없이 부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가치관을 갈구하는 주체적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공자학단은 주로 이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만들어진 공동체였다. 이 공동체의 일원 중 자로는 공자와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로서 평생을 공자와 함께 했다.

사마천은 <공자세가>의 공자제자열전에 자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자로는 본성이 거칠고 야인 기질에 용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심지가 강직하고 직설적이었다. 그는 수탉의 꼬리를 머리에 꽂고 산돼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 그는 처음 공자를 업신여길 때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공자를 때리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자는 자로를 예로써 대하여 그를 설복시켰다. 얼마 후 자로는 유복을 입고 폐백을 드려 죽음의 충절을 맹세하면서 공자에게 제자 되기를 청하였다.”

우리는 머리에 수탉의 깃털을 꽂고 허리에 산돼지 가죽을 차고 공자에게 나타난 자로의 모습을 연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누가서>에 보면 침례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공자에게 있어 자로가 예수에게 세례요한과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는 물론 없다.

공자와 자로의 첫 대면 대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 그대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나는 긴 칼을 좋아하오.
- 나는 그런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대의 지금 능력에다가 학문을 얹는다면 아무도 그대를 따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 학문이라는 것이 도대체 우리 삶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런 말을 하시오?
-임금에게 간언해 주는 신하가 없으면 정치를 망치게 되고 선비에게 가르쳐주는 친구가 없으면 귀가 멀게 됩니다. 미친 말을 몰 때는 채찍을 순간도 놓을 수 없고 활을 당길 때는 한 번뿐 다시 당길 수는 없는 법 아닙니까? 나무는 목수의 먹줄이 닿아야 곧아지고, 사람은 비판을 받아야 비로소 성인이 됩니다. 인을 어지럽히고 사를 미워하면 사회에서 격리될 뿐이니 사나이라면 모름지기 학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남산에 푸른 대나무는 휘어잡지 않아도 스스로 곧고 그것을 잘라 화살로 쓰면 가죽 과녁도 뚫어버리지 않소이까? 하물며 무엇을 또 배울 게 있다는 말이오?
-그 대나무 밑동을 잘 다듬어 깃털을 달고 그 머리에는 쇠촉을 달아 연마한다면 그 가죽을 뚫는 것이 더 깊을 것입니다.

자로는 공자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는 공자보다 9세 연하였고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연장자였다. 타고난 무에 문을 겸비하게 된 자로는 보은의 명분을 위해 죽음을 택한다. 그는 무사답게 자객의 칼에 죽는다. 그러면서도 선비를 지향한다.

“군자는 죽더라도 갓을 벗을 수는 없다.”

자로는 땅에 떨어진 갓을 집어 쓰고 단좌한 후 갓끈을 맨다. 그리고 그는 죽어 버렸다. 자로는 무(武)에서 학(學)으로 인격을 교화한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자로는 인격을 수양하고 사회적 실천을 지향한 <논어>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논어> 첫머리에 담긴 뜻

<논어>는 공자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논어>의 서술자는 의외로 다양하다. 제자들이 기록한 공자의 말 외에도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 제자들끼리의 대화, 당시 항간의 사람들이 나누었던 말들, 군주의 물음에 대한 신하의 답변, 대부의 물음에 대한 학인들의 답변 등이 있다.

주제별로 보면, 개인의 인격 수양과 사회 윤리가 3분의 2 정도이고 그 밖에 정치, 철학, 생활, 고인담, 제자에 대한 훈계, 공자에 대한 당대인들의 평가 등이 있다. 하지만 논어는 후대에 편찬된 것이기 때문에 모두 진실과 사실만을 전달한다고 볼 수는 없으며 실제로 요즘의 학자들에게 의심되거나 논란을 제공하는 내용도 더러 들어 있다.

이제부터 <논어> 본문의 일부를 시범적으로 해석해 본다. 한글 해석은 원문에 충실하되 현대적인 문맥에 부합하도록 최대한 내 나름의 문체로 재구성해 보았다.

제1장, 학이(學而)

자왈(子曰),

배우고 때에 맞춰 익히니 역시 기쁘지 아니한가?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괘념하지 않으니 이는 군자가 아니겠는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아)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위대한 저서라는 <논어>의 모두(冒頭) 발언으로는 대단히 평범하고 진부하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는 문장이다.

여기서 배움이라는 것은 단지 학문적 공부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무지로부터의 탈출이자 전인적 인격을 지향하는 총체적 행위를 의미한다. 공자는 배운 것을 익힘으로써 ‘기쁨’(說)을 얻고 친구를 만남으로써 즐거움(樂)을 체험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쁨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즐거움이란 타인과 더불어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쁨이란 개인적인 것이고 즐거움이란 사회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인지 여부가 아니라 알아서 등용해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확대할 수 있으며, 괘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해석처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스스로 분노하거나 여한으로 지니지 않는다는 강한 의미를 띤다. 결국 군자란 실력과 인격을 갖추었으면서도 소외와 고독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 : 논어에서 ‘자왈(子曰)’이라는 표현은 어김없이 공자가 말했다는 뜻이다. 자(子)는 스승의 위치에 있는 학자를 높여서 부른 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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