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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허락해야 열렸던 남북정상회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나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기초를 토대로 한걸음 더 나아가리라 봅니다.
임병도 | 2018-03-07 08:20: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북 특사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악수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왼손에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와 맨 오른쪽에 김여정 노동장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보인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오는 4월말에 판문점에서 만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했습니다.

대북특사단으로 북한에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아래와 같은 사항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 4월 말 남쪽 지역 판문점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2. 군사적 긴장 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 간 핫라인 설치
  3.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
  4. 대화가 지속하는 동안 북한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중지
  5.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
  6. 비핵화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대화하기로 합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 따르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점에 변함이 없다”라며 “남북대화의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번에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분단 이후 세 번째로 남북 정상이 만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얼마나 힘들게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신이 허락해야만 열렸던 남북정상회담’

역대 정부에서는 빠짐없이 남북정상회담은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북측 인사의 사망, 국내외 정치 상황의 변화 등 갖가지 다양한 변수 등으로 쉽게 열리지 못했습니다.

▲진보와 보수 정권 모두가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북측 인사의 사망과 국내외 정치 외교 상황 등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
박정희 정권 때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1972년 이후락 정보부장이 평양에 갔을 때 김일성은 남북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내비쳤지만, 박정희는 이득이 없다면서 외면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이 있었지만, 전두환은 수해 구호물자를 주고받으면서 비밀리에 남북정상회담까지도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무장 간첩선이 침투하다가 격침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두환은 남북정상회담을 더는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노태우 정부
남북정상회담이 본격적으로 논의됐고 실제로 추진된 시기는 1988년입니다. 당시 노태우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을 통해 김일성과의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습니다. 실제로 노태우의 제안에 김일성이 응하겠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군부와 보수세력, 중국 등의 여러 가지 외부 요인 등에 의해 무산됐습니다.

*김영삼 정부
김영삼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노력은 1994년 7월 25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합의를 끌어 냅니다. 하지만 회담이 열리기 전인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정상회담은 연기됐고 이후 흐지부지됐습니다.

*이명박 정부
2009년부터 이명박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임태희,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등을 싱가포르와 베이징에 보내 북측 인사와 만났습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은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측 인사와의 회동을 폭로하면서 돈 봉투를 주면서 애걸복걸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2015년 박근혜의 밀명을 받은 친박 인사가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접촉했습니다. 하지만 김양건은 그해 12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이후 회담은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친박계는 출구 전략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결렬됐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신이 허락해야만 열리는가 할 정도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분단국가, 약소국, 국제 정세에 민감한 반도 국가라는 특성은 평화를 위한 향한 행보조차 늘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분단 반세기 만에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

▲2000년 6월 13일 특별기편으로 서울 공항을 출발한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영접을 나온 김정일 위원장과 만났다. 두 정상의 만남은 한반도 분단 이후 최초였다 ⓒ청와대 공동 사진기자단

2000년 6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이 만났습니다. 온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 나와 김대중 대통령과 두 손을 잡고 함께 포옹하는 모습은 세계 언론이 앞다퉈 보도할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두 정상의 만남으로 이산가족의 상봉과 금강산 관광, 스포츠 교류 등이 활발하게 진행됐습니다. 또한 장관급 대화와 같은 정치적 대화가 정기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보수에서는 햇볕정책을 폄하하고 무시하지만, 해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줄 만큼 대단한 업적이자 성과였습니다.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노무현 대통령, 2차 남북정상회담’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청와대 공동 사진기자단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사진은 전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분단의 역사가 끝날 수 있다는 희망까지 안겨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10월 4일 오후 1시에 ‘남북정상선언문’을 발표합니다. 이 선언문에는 군사적 적대관계를 끝내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평화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당시 남북은 ‘종전선언’에 합의하고 있었습니다. 휴전 상태였던 한반도에서의 ‘종전 선언’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종전 선언 가능’이라는 입장을 고집하면서 통일에 대한 열망과 속도를 자신들이 조절하려고 했습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 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날까?’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이나 남북관계는 단절됐고 한반도 외교는 파탄이 났습니다. 분단국가가 겪는 위험과 공포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아야 했습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났습니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은 앞선 두 대통령의 열망과 노력이 이어진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초로 김정일과 만나 남북정상회담의 기초를 닦아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6.15선언’을 바탕으로 ‘10.4 평화선언’을 만들어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와 성과를 낼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기초를 토대로 한걸음 더 나아가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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